MBTI로 따지면 '슈퍼 J'라 할 수 있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캘린더에는 근20년에 가까운 일정이 저장되어 있다. 언제 아이와 병원을 갔는지, 지인 누구에게 '문자'를 보냈는지에 사소한 기록도 있다. 어찌보면 참 속박된 삶처럼 느껴질수도 있겠다.
'자유로움'에 관해서는 역설적인 두가지가 있다. '나'의 자유로움은 '계획'에서 나온다.
'자유로움'에 대한 역설은 이렇다.
첫번째, 언제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완전 '슈퍼P'의 자유로움이다. 계획없이 언제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말고 하는 '자유로움'이다.
둘째는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완전히 통제하여 얻는 '슈퍼J'의 자유로움이다. 계획과 일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그로써 얻게 되는 '주체적인 자유로움'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자유로움이란 '통제'속에서 얻게 되는 자유로움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에 큰 스트레스를 갖는다.
'오늘 저녁에 시간돼?' 혹은 '내일 뭐해?'와 같은 질문이 그렇다. 질문을 받는 순간, 선택에 주체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상대'가 'YES or NO' 중 하나를 택하라는 옵션을 주면 내가 갖고 있던 수많은 옵션이 그 자리에서 사살된다.
나의 옵션을 살려내기 위해, 나는 최대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통제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나면 나는 자유를 얻는다.
'슈퍼J'로 살며 언제나 자괴감을 갖는다. 인간의 계획이란 언제든 틀어지는 법이다. 세상살이 뭣하나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20대에는 50대까지의 계획을 세워 놓는 무모함을 가졌지만 그것은 당시 내가 썼던 소설보다 못한 글이 되어 버렸다.
'삶'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 해도 성향이 '슈퍼J'라 계획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마치 내년에 태풍이 올 것을 알면서 올해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밭을 정비하는 일과 같다. 매해, 매달, 어쩌면 매일 계획은 틀어진다.
틀어진 계획을 받아들이고 다시 처음부터 일정을 짜맞춘다. 사실 계획을 다시 짜는 일이 너무 빈번하여 어떤 경우에는 거의 즉흥에 가까운 계획이겠지만 반드시 짜두어야 한다.
'모사재인, 성자재천'
계획은 인간의 몫이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
모르긴 몰라도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조조는 '슈퍼J'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대충 그가 했던 행적만 보더라도 그는 감정보다는 원칙과 질서를 중요시 여겼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선택보다는 법가적 통치를 가졌으며 계획적이고 체계적이고 통제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계획은 인간의 못이고,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고 하는 걸보면 그의 계획 역시 '행동' 중심적이지 '결과' 중심은 아니지 않았는가 싶다.
나의 계획도 그렇다. '뭘 해야겠다'는 있어도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계획은 없다. 그런 계획는 내가 아니라 하늘이 해야 할 몫이다. 스스로의 계획에 대한 무기력을 '자신에 대한 무능'이 아니라 '절대적 힘'에 대한 순응'으로 받아드리는 그의 자세를 보면서 '하늘'을 경쟁자로 두지 않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나도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살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배운다. 영역이 다름을 인정하면 내 몫에 최선을 다할 수 있지만 하늘의 영역에도 좌절감을 느낀다면 내 몫에 최선도 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받아들임'은 지는 것이 아니라 현명해지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