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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Mr.Bean을 보다가..._잊혀진 공포감에 대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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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아이와 뒹굴거리다, 함께 볼 수 있을 법한 영상이 뭐가 있을까 고민중 어린 시절에 봤던 '미스터빈'이 떠올랐다. 말 한마디 없이 직관적으로 웃음을 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라 선택했다.



한참 보다가 잠에 들었었다. 아이 둘은 한참 '저 아저씨'가 왜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토론한다. 분명 웃음포인트인데 아이들은 진지하게 그것을 보며 '저러면 안되는데...'한다.



다시 잠에 들며 아이들의 장면이 페이드아웃 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미스터빈'은 '금붕어'를 들고 있다. 물이 담긴 비닐 속에 금붕어가 들어 있는데, 물이 조금씩 샌다. 어린 시절봤던 장면이라 결론은 안다.



이제 곧 금붕어를 입에 넣을 것이다.



장면이 다시 페이드 아웃된다. 눈을 다시 떴을 때, 아이들은 1초에 한번씩 장면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한다.



'보지말자, 너무 무서워'



아이들은 1초에 한번씩 장면을 멈추더니, 나중에는 어느 지점에서 완전히 장면을 멈추고 식탁으로 가 앉아서 동화책을 읽는다.



분명 아이들에게도 재미있을 포인트라고 여겼는데 아닌가보다.


금붕어를 삼킬까봐 조마조마했던 아이들은 끝내, 그 뒷부분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9살이라고 하더라도 금붕어를 입에 넣는 장면이 그렇게 보기 무서울 정도인가..., 하다가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했다.



정기적으로 내가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1999년에 MBC에서 방송했던 '허준'이다. 이미 봤던 드라마를 몇번이나 돌려 보느라 드라마에 있는 단역배우의 얼굴도 너무 익다. 그러다 최근에는 아이들 앞에서 허준을 못보게 됐는데 이유는 이렇다. 허준이 무섭단다.



'허준'이 무서운 드라마였던가..., 아마 아이가 본 모습은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배를 가르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아이는 '허준'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꼭 귀를 막는다.



따지고보니 나의 공감능력에 약간의 문제가 있나, 싶어진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은 머리가 산발인 인형이 나오는 공포 영화를 보셨다. 그때가 아마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사탄의 인형'이라는 공포 영화는 그 뒤로 내 인생 최고 무서운 영화였다.


그렇게만 기억이 나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무서운 영화'라는 것이 없다. 어쩌면 거기에 몰입을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배우와 인물을 동일시 하지 못하고, '저 배우'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환한 웃음이 가득한 피드가 나올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효과를 썼는지, 제작 비용은 얼마일지, 화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을지..., 뭐 그런 잡념이 떠오르다보면 저 '허구'를 보며 공포를 느끼는 것이 맞나, 할 때도 있다.



언젠가는 정말 실감나는 공포영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사탄의 인형'을 다시 봤다. 어린시절 그렇게 무섭던 영화가 다시 봤을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가령 '저 인형'의 얼굴은 '플라스틱'일텐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혹은 무릅 정도 오는 저 인형에 성인 남자들이 당하기만 하는 모습들이 작위적이여 보인다고 할까.



공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생동감 넘치는 공포'를 너무 많이 느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같은 자극적인 공포는 아니겠으나 군입대 후 운전병들이 가는 '후반기 교육'에서 느낀바도 그와 같다. 그곳에는 화장실이 딱 하나가 있었는데, 화장실이라기보다 '구덩이'에 가까웠다.


십수년, 어쩌면 수십년을 쌓아 올린 '변'이 바로 밑까지 차오르고 발 딛을 공간도 없이 가득한 그것들...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유학 시절에는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음날 시험장에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때 강의실에 입장을 못했던 기억이 있다. 중국인 여교수는 아무리 사정해도 시험을 치룰 수 없다고 딱 잘라 말을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과목 하나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니고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한학기를 한과목을 듣느라 시간을 보내는 건 유학생으로서 정말이지 끔찍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생활비가 떨어져서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굶었다거나 치약을 빌리기 위해 '일본인 친구'에게 갔다가 거절 당했던 일들도 영화에서 만날 수 없는 황당하거나 끔찍한 일들이었다. 하나하나 떠올리면 너무 많은 그 공포들로 감정이 무뎌진 걸까.



웬만한 공포는 무섭지 않다. 그러다 '허준'이나 '미스터빈'을 보고도 '무서움'을 느끼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새삼 부럽기도 했다. 잊혀진 감정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는 느낌이랄까.



공포감 뿐만 아니라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감정이 그렇게 무뎌진 것 같다. 뭔가 위아래로 출렁거리던 감정의 폭이 상당히 줄어든 느낌이랄까.


예전에는 아주 스치는 인연이라도 '마지막'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남몰래 울던 순수함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각자 잘 살게 되겠지'하는 정도의 느낌만 남을 뿐이다.



어떤 책에서 보건데 '호모사피엔스'의 자연적 수명이 30대 후반이란다. 본래 자연이 설정한 인간의 수명을 이미 넘어섰다. 즉 본래는 이미 존재가 아니었어야 할 삶이지 않은가. 불가 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50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젊다는 40대는 사실 상대적 젊음일 뿐이다.



인간 나이가 40에 다가워지거나 넘어서면 어쨌건 그 '삶'은 '시대'가 준 보너스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대부분의 경험은 기존에 겪었던 경험인 경우가 많고 어떤 선택은 기존의 선택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닥 특별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삶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기 쉽지 않다. 이런 감정은 어찌보면 '무기력함' 처럼 느껴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안정적임'과 같은 긍정적 감정이다.



이 글의 주제는 없다. 그저 아이와 '미스터빈'을 보다가 떠올랐던 감정을 두서 없이 나열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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