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_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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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의미로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이든 안하느니 못할 것 같다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한다. 차선도 마뜩잖다면 차악이라도 택해야 한다. '차악'마저 택할 수 없다면 '최악'이라도 택해야 한다. 선택에서 '최악'보다 더 나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음, 주체성을 상실했음을 말한다. 하고저하는 바를 상황에 맡겨두는 것으로 그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 스스로를 방치하는 행위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황'이 대신 결정하도록 하는 일이다. 결정을 유예하면 기회비용은 누적된다. 회피는 '통제권' 상실을 뜻하고 '최선'에서 '차선'으로, '차선'에서 '차악'으로, '차악'에서 '최악'으로 내려오되, 선택의 주체가 스스로 되게 해야 한다.



'최악'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최선'을 고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큰 용기' 가졌을 지 모른다. '최선'을 고르는데 아무런 용기가 필요없다. 다만 '최악'을 고를 때에는 항상 '각오'와 '책임'이 필요하다.



1940년 윈스턴 처칠은 '세계2차대전'에서 최악의 선택을 했다. 당시 영국은 고립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정복된 이후였고 유럽 대부분이 나치 독일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군사력, 물자, 동맹 어느 하나 유리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현실적 차악이라면 '독일'과 조건부 협상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 정치 엘리트의 상당수가 실제로 그 판단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은 '차악'을 선택하는 대신 '최악'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실제 역사에서도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런던이 폭격 당하고,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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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항전은 미국 참전의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참전이 가능해지는 '도덕적,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 줬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패배하지 않은 국가'로 남아 '민주 진영'의 상징적 거점'이 됐다.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살다보면 그 앞이 낭떨어지임을 알고 발을 옮겨 뗄 때가 있다. 그것이 꽃길을 걷는 발걸음과 어찌 같은 용기를 필요로 할까.



최악을 스스로 선택해 본 이들은(비록 그 결과를 알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강력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선택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을 만들어주고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길러 내도록 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가' 묻는다면, '윈스턴 처칠'의 사례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분명하게 존재한다. 내가 딛을 다음 발자국이 '고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면서 떼던 순간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선택'으로 인해 직선으로 알고 있던 목적지는 수천배나 돌아가는 셈이 됐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압박'이나, '자책'도 많고, '주변의 시선'이나, 스스로의 자존감을 좀 먹는 '우울감'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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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나 '선택'을 후회하더라도 현실은 억지로 그 책임을 어깨 위에 지어냈기에, 피치 못하고 나아가야 했다.



생각해보면 '선택'은 순간이고 '책임'은 영원하다. '선택'은 관념적 행위고, '책임'은 '땅에 발을 듣고 지어내는 현실'이자 '행동'이다.



오늘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기예보를 봤더니, 내일은 '비가 온단다.' 내일 비가 온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를 위축되게 하진 않는다. '내일 비가 올 예정이니, 자전거는 비를 맞지 않게 두어야겠군'하고 생각할 뿐이다.



날씨는 본래 이랬다저랬다 한다. 제주도의 경우는 '섬'의 특성상 습도가 놉고 '산'의 특성상 '지형성 구름이나 안개'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 고로 '기상청 기준으로 맑은 날씨'라고 할 수 있는 날은 연간 60일에서 80일 수준 밖에 안된다.


(물론 체감상 대략 150일은 되겠지만...)



흐린 내일을 알고 있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좌절할 명분'이 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를 시험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최악이건, 최선이건, 차악이건, 차선이건 100년이라는 긴 흐름 속에서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 45억년을 기준으로 지구의 기온을 표시한 그래프를 봤더니, '지랄맞은 날씨'나 '맑은 날씨'나 그저 흔들림 없는 '한줄'로 표현될 뿐이었다.



내일 비가 온다면 비가오는 구나... 하면 되고, 내가 한 선택이 '최악'이었고 그로인해 꽤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다면, '뭐.. 있나 보구나...'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맑아지고, 최악의 선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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