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작은 인생이다_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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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작은 인생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얼핏 '유시민 작가'로부터 들었던 것 같다.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소재'처럼 그 문장이 '유시민 작가' 출처의 글은 아닐 것이다. 그 문장을 좇고 좇다보면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았다는 '뉴턴'처럼 조금더 영향력있는 인물을 만날지 모른다. 다만 뉴턴 역시 '조지 하버트'의 말을 인용하고, 그 역시 '요아네스 사레스베리엔시스'의 말을 인용했다는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사실 '출처'를 찾은 것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문장은 때로 대중에게 유명한 한사람에 의해 더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경로든 나 역시 공감되는 문장을 만났고 이 문장을 확산하는데 미약한 보탬을 다시 더하고 있다.



'삶의 본질'은 '살아내는 것'에 있고 '살아내는 것'에 기왕이면 '행복'이 있어야 한다. 고로 삶의 최선이란 '행복하게 살아내는 것'인지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모두는 '행복한 삶'을 위해 생존하고 있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마치 눈앞에 매달려 있는 '당근'을 쫒기 위해 빠르게 달려가는 당나귀처럼 한걸음을 걸어나가면, 역시 한걸음 멀어질 뿐이다.



애당초 사회의 본질은 '행복'이 아니라 '생존'에 있다. 행복은 '개인 단위'로 내려 갔을 때만 의미를 가진다. '사회'라는 집단에게는 '생존'과 '성장'이 유일한 목표이자 본질이다.


1970년대부터 GDP(국내총생산) 대신에 GNH(국민총행복지수)로 국가의 발전 핵심을 지표로 삼고 있는 '부탄'을 제외하고 '사회'는 개인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추가적으로 부탄은 '국민총행복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이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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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유지하는 근간 개념은 '이념'이라고 부르는데, 국가 운영 근간이 되는 사상 체계는 대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회주의, 공화주의'이다.


이 모든 '개념'과 '이념'은 국가의 '생산성'에 초점을 두었을 뿐, 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한 고민은 없다. 대체로 이런 철학의 뿌리는 '베이컨'에서 시작하여 '애덤 스미스'와 '칼 막스'로 이어진다.



고로 '국가'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움직여 더 많은 생산성을 만들어 '집단'을 유지시킬 것인가,만 생각할 뿐이다. 고로 '시스템' 속에서의 '최선'과 생물학적인 존재 이유과 분명하게 어긋나 있다.



애당초, 핸리 포드가 주5일제 근무를 도입한 이유는 근로자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근로자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였다.



많은 복지 국가가 복지 예산을 늘리는 이유는 '실업과 빈곤'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억제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의료'와 '교육' 역시 노동력을 유지하고, 숙련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함으로 시작하고 실업급여 역시 '소비유지'를 위한 장기적 투자 비용에 가깝다. 이 대부분은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생산성 유지를 위한 투자 비용'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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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을 걷어내면 인류 역사의 99%는 '생산성 유지 및 확산을 목적으로 자신의 생을 갈아 넣은 적이 없다.


산업화 이전까지 사람들은 대충 해가 뜨기 시작할 즈음 일어나 활동을 하고 적당히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생산정도를 하다가 그 정도가 넘어서면 하는 피로해 질 때까지 '과잉생산'을 하기 위해 잔업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잠시도 멈춰 있을 수 없다. 공장은 반드시 가동이 되어야 하고 꾸준하게 생산품을 소비자에게 넘기며 규모를 확산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잉생산'은 필수불가결한 구조다. 고로 사람들은 집단으로 모여 정해진 시간만큼의 업무를 의무적으로 하고, 생존하기 위해 '성장'을 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삶이 남의 일을 거드는데 사용되는 이 과정을 한 평생 반복하다보면 스스로를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는가 의심을 할 지 모른다.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순수, 제목에 대한 극한 공감으로 구매했다. 실제로 없는 시간을 쪼개어 겨우 읽었던 이 책에서 나는 얼마나 '나의 인생'을 '시스템의 부품의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위해 썼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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