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소득일수록, 식비에 사용하는 소득의 비중이 크다'라는 기사였다. 그 기사에는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통계'가 있었다. 그랬다. 지출에서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식비에 사용하는 비중은 월등하게 높아졌다. 그것은 돈을 적게 벌수록 식탐이 많고 돈을 먹는데 채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이 하루에 먹는 식사는 세 번 밖에 될 수가 없고 식비에 사용하는 금액은 일정 금액 까지지 일정하게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금액이다. 고소득자인 경우, 자동차 할부나 명품 가방 등을 구매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출 내역 중 식비의 지출내역이 적어지게 된다. 그런 기사는 과연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걸까?
XX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취업률이 늘어났다는 기사나 어떤 정권이 집권을 하면 경제 성장률이 올라간다는 기사가 있다. 그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특히나 정책의 방향에 따라 정부가 보고자 하는 부분을 강조한다면 언제든지 숫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얼마나 경제적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광고하는 통계자료가 쏟아지던 시기 그것은 절대적인 진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자력 발전소는 마치 사회의 악인 것처럼 그려진다. 미중 무역 갈등에서 또한 균형적이지 않은 시선에서 보도되는 여러 매체와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갈등에서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균형적이지 않은 시선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는 숫자들은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팩트 풀니스를 보고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 보는구나 하는 '인지부조화'를 이용한 정치적 경제적 선동이나 세뇌에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쌍둥이 딸들과 제주시에 있는 '남문 서적'을 방문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달라고 했다. 부쩍 공주에 관심이 많은 다율이는 '핑크색 표지'의 책들을 골라왔다. 대부분은 '여성인권'이나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왜 페미니즘 책들의 표지를 핑크색으로 했는지, 그것이 의도적 반어 표현인지 아니면 저자들의 자가당착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관심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들이 읽고 싶다고 타일렀다. 서너 권의 핑크색 표지 책을 가져왔던 다율은 결국 책을 고르지 못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덥석 하고 과감하게 책을 한 권 집은 하율이는 나에게 그 책을 가지고 왔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 이거 쫌 관심이 가는구나' 아이들 책들을 한 권 씩, 그리고 이 책을 한 권 구매하고 서점을 나왔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그 전개가 꽤 정리 잘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지만 그 소재면에선 훌륭했다. 또한 이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도 많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게 되긴 했으니 이 또한 좋은 책으로 분류가 가능하겠다. 여름철 태풍이 오면 보이는 태풍의 진로에 항상 궁금증이 있었다. 그것이 나를 움직일 정도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보진 않았지만, 어째서 태풍의 진로는 태평양에서 한반도로 다가 올 수록 원뿔 모양으로 점점 커져가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이 책은 명확하게 말한다. 불확실성에 의해 그저 영향권에 속할 수 있을 만한 구역을 표기하다 보니 점점 더 넓어질 뿐, 실제 태풍의 세력이 커지거나 규모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언제나 정확할 수 없음으로 그들이 이야기 하기에 확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원인으로 태풍의 진로는 서서히 커지면서 점차 원뿔 모양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이었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트럼프가 제시했던 지도 또한 색다르게 보였다.'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많은 '주'를 붉은색으로 표시하여 사람들에게 선전하곤 했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적고 주 면적이 넓은 지역 곳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던 탓에, 실제로 힐러리와 트럼프가 비등한 투표 결과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제시한 지도에는 미국 전역이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이 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어떤 부분은 감추고 어떤 부분을 부각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자수와 누적 확진자수 그리고 사망자 수를 한 그래프에 놓게 되면, 당연히 누적 확진자 수는 마치 복리와 같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점차 줄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던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두 개의 표본에 대한 비교 또한 매우 위험하다. 가령, 확실한 목적을 두고 그것을 근거로 삼는 경우에는 얼핏 보기에 인과관계가 있어 보이는 일들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인류 출생 70만 년 간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데, '김순자(가명_48세)'가 태어나고 난 뒤부터 인류가 급격한 변화를 이루며 인공지능을 개발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말하면 그렇다. 얼핏 그래프만 가지고, 컴퓨터의 탄생과 디지털의 탄생 시기와 김순자의 출생 연도를 비교해보면 그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러한 인과관계가 마치 있는 것처럼 보여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통계와 그래프에 속지 않는 데이터 읽기의 힘은 앞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객관적이라는 '신임'을 얻고 있는 대상이 이처럼 언제나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대중을 선동할 수가 있다. 참 가식적인 이고 어이없는 기사도 있다. '기독교를 믿는 국가일수록 1인당 GDP가 높은 부유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일본과 사우디 아라비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서방국가가 믿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선전하는 기사도 있었다. 이는 명확한 인과관계에 따른 대비가 아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지금 당장 생각해보자면 끝도 없다. 이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국가일수록 인구가 많으니 '저출산 시대에 인구 부양을 위해 중국어를 사용하자' 따위의 터무니없는 주장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억지이다. 통계는 얼핏 우리가 보는 것이 사실이고 객관적일 것이라는 착각을 주지만, 그런 자료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에 대해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목적으로의 선동과 세뇌를 넘어 정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국제 IT, 플랫폼 기업'들의 경제적 선동과 세뇌에 우리는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가는 세뇌와 선동에 우리의 지갑은 얼마나 가벼워지는가. 끊지 못하는 여러 가지 콘텐츠로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그들에게 얽매여 있게 되는가. 시간과 금전이 그들에게 얽매이면 우리는 그들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나 노예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