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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31. 2021

[생각] 쌍둥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무엇이 되던 좋다. 읽고 쓰는 사람이돼라

 일기장에 기록해도 될 법한 이야기다. 나는 내가 읽었던 책을 절대 자의로 판매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내가 읽은 책은 아무리 '쓰레기 같은 책!'이라고 평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나의 서재에 고이 모셔둔다. 내가 아이에게 남줄 수 있는 지적 자산은 많지 않다. 그건 확신한다. 중학교만 가더라도 보통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중학교 수준이면 독립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도적으로나 사회 관념의 문제로 20세까지는 부모가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아이들이 조숙해지는 시기 분명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중학교 정도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은 욕심이 간절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강아지나 송아지, 비둘기에게는 사춘기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존재하는 것일까? 표현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 것은 철저하게 성인의 시선에서 본 아이들의 시선이다. 사실 구석기시대쯤이라면, 조금 버거울 수 있어도 10대 중후반이면 스스로 자립하고 살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가르쳐야 할 규범과 지식이 많아져가고 그것을 강제로 하기 위해 부모라는 울타리가 필요했다. 그런 모순 때문에 아이와 어른의 갈등은 필히 아이가 생물학적 성인이 될 때쯤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다 할 조언을 해줄 수도 없지만, 아마 아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남겨 줄 수 있는 지적 유산은 책과 습관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내 조언은 10년만 있어도 철 지난 구닥다리 꼰대 같은 소리일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시점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올바른 판단과 진로를 내려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올바른 판단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습관과 판단력 정도만 길러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10대 시절의 나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살았고, 무엇을 했으며 목표는 무엇이고 왜 그런 판단과 행동들을 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매일 뻔하디 뻔한 삶을 살고 부모님과 제도가 정해준 기준대로 살았으니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아마 나의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던 듯하다. 

 20살이 지나면서 군대를 가게 되고, 유학을 가기도 하고 스스로 진로도 정하고 연애도 하고 배신도 당해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사업도 해보고 취업도 해봤다. 많은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그때의 실패와 성공들은 분명하게 나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나에게 참 좋은 경험과 지식이 쌓여간다는 느낌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 자산을 잡아두지 않았다. 매일 꾸준하게 썼던 일기장에는 그때의 내 감정이 고스란하게 남아 있다. 지금 읽어보면 남의 일기장을 읽어보기라도 하는 듯 새롭고 신기한 글들도 많다. 남들에 비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기를 쓰지 않았던 10대의 기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뜨렸던 나머지 20대 이후의 기억들은 너무 아깝다. 모두가 자산 었는데 싶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극하게 현실적이시던 어머니는 집안 공간을 차지한다는 명분으로 내 일기장과 책을 겨울철 장작불에 넣으셨다. 그것은 당시에 최선이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국에서 읽었던 책을 슬금슬금 뉴질랜드로 옮겼다. 꽤 많이 모여진 한국 책들과 현지에서 산 현지 책들이 나 플랫에 쌓여갔고 내가 한국으로 귀국을 결정했을 때, 그들의 대다수는 현지에 버려지고 나눠졌고 나머지는 공항에서 들고 입국하다 출국 시 무게 초과로 공항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캐리어에 있는 옷을 모두 쓰레기 통에 버리고 안 쓰는 전자기기와 무게가 나가는 거의 대다수의 것을 모두 버리고 겨우 채운 캐리어에는 몇 권의 책만 남아 있었고 그대로 책만 들고 귀국했다. 

 읽고 쓰는 것 중에 무엇 하나 아이에게 남겨 줘야 할까?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 두 개 모두 중요하다. 쓰는 것을 위해 읽기는 필요하고 읽는 것은 쓰는 것을 동반해야 한다. 이는 오른발과 왼발 중 어느 쪽이 더 걸어 다니는데 효율적이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갔다 오면 유치원 가방에 아이들이 만들어 온 잡동사니들이 온다. 그것을 처음에는 모왔던 적이 있다. 하나 둘을 몹다보니, 집안이 쓰레기 천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만들어 온 색종이가 조잡하게 붙어 있는 모자와 카네이션부터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박스에 잘 담아 창고에 넣어 두기도 했지만 나의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의 물건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빨리 읽고 쓰는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 어쩌다 한 번씩 아빠가 무엇을 읽고 있고 무엇을 쓰고 있는지 어쩌다 한번 궁금할만한 나이가 되면, 내가 군소리하거나 '읽어봐라!', '들어봐라!'의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지금 이 글이 발견될 것이다. 발견이 되지 않는다면 다만 얼굴도 모르는 다른 아이들에게 발견이 돼도 좋다. 누구의 아이인들 꼭 알려주고 싶은 내용이 있다. 우리가 멋있는 말로 하는 '빅데이터', '데이터베이스'라는 용어들... 사실은 오늘 써 내려간 기록들이다. 매일 365개의 글을 써 내려가고 3년 간 1000개의 글을 쓰고 30년간 1만 개의 글을 썼을 때, 그것이 의도건 아니건 반드시 누군는 읽을 것이도 너희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스스로에게는 추억과 백업자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되는 읽고 쓰는 능력을 길렀으면 좋겠다. 직업이야 뭔들 나쁘지 않겠는가 싶다. 마트 캐셔를 하던, 정치인을 하던, 편의점 알바를 하던 괜찮다. 어쩌면 아이들의 글에 광고가 붙기도 하고 아이들의 지적 자산에 마케팅적 요소 혹은 강연 요소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는 있을 것이다.

고3이 돼보지 못한 고2들에게 고3의 경험담은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20살이 되었다고 시시했던 지난 기억들은 누군가가 간절하게 얻고 싶은 자료들이다. 그 값어치가 500원일 지라도 10년간 500원짜리 자료를 쌓는다면 10년 뒤에는 185만 원의 값어치가 생기는 것이다. 아마 매일 누군가가 너의 하루를 500원에 구독하고 있다면 10년 뒤부터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정도의 고정 수입은 불로소득으로 얻을지도 모른다. 그 잘났다는 건물주가 되어 물리적 공간을 대여해주고 돈을 버는 일보다 더 값지고 멋진 일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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