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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01. 2021

[일생] 10년 전 사용하던 수첩을들여다봤다.

 외출을 다녀오면 서재는 항상 다양한 모양으로 헝클어져 있다. 아이들이 이 책, 저 책을 꺼내어 놀다가 나가는 모양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은색 수첩이 있었다. 수첩 주위로 검은색 가루들이 떨어져 있다. 수첩이 오래되면서 겉에 있던 싸구려 커버가 부식된 모양이다. 대충 손으로 '툭. 툭' 턴다.  입으로 '후~'하고 불고 보니 손에도 잔뜩 묻어져 있다. 손을 다시 '툭툭' 턴다. 수첩을 들여다보니 내가 10년 전,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적었던 수첩인 듯했다. 이 수첩을 보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되게 오래된 것 같은데, 고작 10년밖에 안 지났구나'와 '아직은 내가 한참은 어리구나'라는 사실이다. 10년 전에 나는 지독했다. 거의 매일이 기록되어 있는 10년 전의 일기에는 하루의 기록뿐만 아니라 다짐도 있고 가계부며, 나를 다잡는 명언과 간단한 영어회화, 앞으로 계획 등이 정리 없이 적혀 있었다. 잊고 지냈는데, 그때의 기억이 살아났다. 저 수첩은 정말 내가 목숨처럼 소중히 다뤘던 수첩이다.

 나의 주머니에는 BNZ이라는 뉴질랜드 은행에서 공짜로 받은 파란색 볼펜 한 자루와 저 수첩이 있었다. 수첩에는 이미 잊혀 있는 당시 친구들의 전화번호와 생일이 적혀 있었고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들의 군대 전역일과 통화내역도 적혀 있었다. 어렴풋 있었나 싶었던 주변인들의 명확한 이름과 전화번호, 나이 등이 적혀 있다. 소름 끼칠 정도다. 나는 당시 핸드폰이 있었지만, 핸드폰에는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나의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0건이었고 모든 전화번호는 수첩에 적어두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철학을 갖고 했던 행위였던 것은 맞다. 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기 위해서였거나 몇 번을 잊어버렸던 전화기에 대한 불신 혹은 이 치럼 아날로그식 기록이 갖는 강한 믿음 때문인 듯하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이 가장 설득력 있다. 당시 전화기에 있던 내용은 모두 살아졌으나 저렇게 종이에 남긴 흔적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수첩의 제일 앞에는 내가 매일 같이 들여다보던 자작시가 적혀 있다.

나는 나를 믿습니다

나는 나를 믿습니다.

타인이 무어라 하여도

나의 신념과 비전을 신뢰합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굴하거나 꺾이지 않습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뻗어 가는 만큼

성장하는 것은 압니다

나는 나를 믿습니다

나는 나를 믿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지금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나는 매일 아침 저 글귀를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에 자는 시간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과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며 여유로운 나라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예전에 백종원 대표가 나왔던 골목식당의 어느 내용이 떠오른다. 그는 긍정의 기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하게 그런 이휘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과거에 연연해하는 여사장님께 하는 말씀이셨는데 번뜩이는 내용이었다. 그는 과거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차지할 공간이 없다고 했다. 현재에 대한 치열함과 집중으로 과거의 기억을 밀어내라고 했다. 울더라다 치열하게 악을 쓰고 기어코 성공을 한 뒤, 집에서 돌아가서 눈물을 흘리라고 했다. 

 예전에 내가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 오셨던 적이 있다. 무언가 경제적으로 크게 잘못되었다는 통화내용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 통화 이후로 어머니는 꾸준하게 눈물을 흘리진 않으셨다. 내 기억이 옅어질 만큼 그 날 하루 눈물을 보이시고는 현실에서 수습할 수 있는 일에 충실히 수습하셨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 당시에는 몰입될 수 있다. 하지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슬퍼할 것만이 아니라, 두 발로 걸어가 타오르는 불을 꺼야 한다. 그저 바라보고 슬퍼하는 일 따위는 현재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발등에 불을 끄기 위해선 슬퍼해야 할 감성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그 뒤에 덴 상처에 대한 고통은 후 순서다. 생각해보니 나의 상황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발 빠른 대응과 선제적인 성장이 먼저다. 그리고 한참을 스스로의 진도를 뺀 뒤에 잠시 숨을 돌리며 뒤돌아 볼 때, 수습된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슬퍼하던 해야 한다. 정신이 바짝 든다.

 가끔 잘 정리된 자기 계발서보다 이렇게 우연하게 들여다본 나의 오래된 일기장이 더욱 자극을 줄 때가 있다. 잠깐의 추진력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다시 자극받아본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서른이 되고 나서 나는 일기를 쓰는 일을 게을리했다. 당시에는 늦게 찾아온 사춘기처럼 방황하고 뒷걸음치기 바빴다. 하고 싶은 일보다 일단 넘어야 할 산들을 넘어서야 했다. 이성을 상실했던 수년의 시간이었다. 지금 정신이 번쩍 하고 든다. 마치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뜬 것처럼 세상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 나는 저런 일기장이 꽤 많이 쌓여 있다. 내가 열정에 타오르던 시기에 나는 해당 감정을 저 종이 쪼가리에 백업해 두었다.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저 일기장을 꺼내놓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했던 일들 중에 저런 식의 '기록'과 '독서'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이렇게 넷 상에 글을 매일 같이 올리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넷 상에도 올리지 못한 솔직하고 '오글거리는' 촌스러운 생각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게 중, '이 정도는 사람들에게 공개돼도 괜찮겠어'하는 내용들만 자가 검열 후 올라간다. 저렇게 아날로그에 기록하던 내 예전 습관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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