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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31. 2021

[소설] 정의, 치유, 회복, 용서의 이야기

우리가 원했던 것들 독후감

 '내슈빌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에서 일어난 SNS 스캔들'이라는 소재... 그저 무난한 청춘소설이거나 번역자 문세원 님의 말처럼 흔한 칙릿(여성의 사랑과 일을 주제로 한 소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 없으니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던 책은 쉽게 읽히는 가독성과 빠르게 진행되는 진행, 금방 소설 속 세상으로 빠져가는 몰입도까지, 그간 일주일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서 딸을 키워 온 싱글대디 '톰'이 목수로 일하면서 보냈던 엘리트 사립고등학교가 배경인 소설. 책은 주인공이 따로 있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측면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소설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런 유형의 소설은 내가 몹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무조건 한쪽 측면에서 쓰인 소설은 '악'과 '선'이 분명하게 나눠진다. 이 소설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일상에서 생길 수 있을 법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시각으로 기술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지 못하는 반전과 또 다른 반전들... 이 책의 묘미다. 펼쳐진 책의 오른쪽 페이지가 얇아질수록, 과연 이 소설의 끝은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될지 궁금했다.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에서 존재하는 '부'와  '특권'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을 마다하고 어디나 존재했다. 책은 여성의 문제도, 인종차별의 문제도, 계층 간의 문제도 모두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일이다. 책은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가해자 어머니가 겪었던 과거의 피해에 대한 공감, 그 때문에 겪게 되는 일련의 내적 갈등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에서 가해자의 어머니는 피해 경험이 있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얼핏 가해의 경험이 있다. 서로 자신과 닮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고 상황과 상황은 그 두 계층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이어져간다.

 이것은 과연 소설 같은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에 관해, 일종에 '오락'정도 혹은 '일탈'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실제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저 장난이었다거나 가벼운 농담이라거나 하는 일 따위로 취급하는 가해자들의 시선. 그리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기억하며 매 순간 잊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시선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공감하기 힘든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나온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이에 대한 무게는 분명 묵직하게 다가온다. 또한 나 스스로도 특정 인종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도 무조건 존재했기에 소설을 읽으며 가벼운 농담처럼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하며 위선을 떨 수는 없었다. 이 소설은 SNS에서 발생된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다. 때문에 다른 고전적 소설들에 비해 훨씬 더 공감을 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다.

 가끔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자살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연예인들의 자살 기사에는 '누가 00을 죽였는가?', '악플러들을 저주한다.', '천국에서 편히 쉬기를...',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을까?, 악플러 너희들도 똑같이 되돌려 받을 것이다.' 등의 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사람 참 이중적이다. 어떤 네티즌이 해당 댓글에 아이디를 추적해 본 결과, 그런 댓글을 단 사람들 또한, 지나가는 말로도 슬쩍하고 던졌던 악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토나와', '쟤는 왜 자꾸 나오지?' 등등.. 그들이 연예인 자살 기사에 달았던 명복을 빈다는 댓글은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다만 자신이 아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던 짧은 순간이 얼마나 큰 파장이 될지 감도 잡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악'이라기보다 '망각'이라고 생각한다. SNS는 이슈화되기를 바라고 자극적이길 바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바란다. 실제 대중 앞에서 할 수 없는 도덕적이지 못할 법한 말과 행동이 여과 없이 나온다.

 책에서 시점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넘어갈 때마다, 어색함이 없다. 한 사람의 시점에서는 오롯하게 그 사람으로서 상황이 공감되고, 다른 시점으로 넘어가도 그 시점으로 공감된다. 마치 내가 현실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과 시점을 훈련하는 것처럼 시선이 이곳과 저곳으로 자유롭게 넘어들며 모두 어색하지 않게 공감된다. 읽다 보면 어딘가 나랑도 비슷한 상황과 사람들이 나온다. 가해자에서도 볼 수 있는 '나'와 피해자에서도 볼 수 있는 '나' 나는 이 사회의 정의에 가해자 일 수도 있고, 피해자 일 수도 있다. 어떤 명확한 노선을 타고 있지 않고 분명히 양쪽의 측면에 서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특권층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 교정시설을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울한 사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사기로 들어왔거나 성범죄로 들어왔거나 혹은 폭력으로 들어왔거나 스스로 억울하게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만약 내가 비슷한 사건에 가해자로 법적인 연류가 되어 있을 때, 나는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고 사법기관이 내려주는 결정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변호라는 가면에 숨지 않고 정직하게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도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해결과 수습에 최선을 다하진 않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책에서는 피해자 아버지 '목수'와 가해자 아버지 '성공한 사업가'가 나온다. 성공한 사업가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벌어진 상황에 대해 신속하고 깔끔하게 대처해 나가는 법을 배운다.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시도는 바로 아들이 타인들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 벗어나게 하는 것과 닮아 있다. 일단,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수습하고 해결하는 것이, 용서를 받고 사과를 하는 것보다 우선인 사회. 또한 되려 가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피해자의 자세. 어딘가 모순이 많이 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구조가 아닌가.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들으면 어딘가 마음 한 편이 후련하다. 나쁜 놈들은 결국 종국에서 처벌받고 처참하게 망가져야 속이 후련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절한 대응과 깔끔한 수습은 사건을 무마시키고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게 한다.

 이 책의 마무리는 어딘가 씁쓸하기도 하다. 오랫 만에 푹~하고 몰입하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간 독후감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474쪽에 도톰하고 묵직한 책이다. 후딱후딱 넘어가는 속도감과 가독성에 책의 두께는 느껴지지 않는다. 되려 책이 더 두꺼웠어도 지루하지 않을 법했다. 책을 완독 하는 데는 대략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소설을 읽는 것은 간접 경험을 나의 머릿속에 이식하는 행위다. 이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 계층에 대한 간접 경험과 정의, 치유, 회복, 화해, 용서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계층에 대한 문화와 이해 또한 가능하다. 책은 감히 말하지만 정말 재밌다. 넷플릭스에서 짧은 시리즈 한 편을 정주행 한 느낌이다. 깊게 어딘가에 몰입하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보기를 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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