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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07. 2021

[생각] 착해지지 마라. 어차피 당신은 착하지 않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거나 거절을 못하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하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불필요한 관계의 무난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착한 것은 불편하거나 불행한 사람을 돕고 주변에게 상냥한 기운을 주면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끔 입을 닫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것을 착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어른들은 강아지나 어린 우리들에게 시키는 대로 잘 따랐을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고 착하다!'. '착하다'의 의미를 잘 못썼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육을 했는지도 모른다. 착하다는 것은 선행하여 좋은 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우리말에서도 착하다는 표현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되어 있다.


 언행이나 마음 씨가 곱다는 것은 고분고분 윗선의 명령을 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능동적인 선행을 말한다. 앞에서 떠들어대는 욕지거리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착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자신을 보호할 정도의 언쟁을 벌이지 못하는 것은 그저 무능이고 나약함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하는 일에 어른들은 '아이고 착하구나'라고 했고 어른들의 말에 반항하는 이들에게는 '반항아'라고 꼬리를 붙였다. 하지만 '반항'이란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맞서 대들거나 반대하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가 당신을 해하려 한다면, 혹은 당신의 주변을 해하려 한다면, 당신의 공동체를 해하려 하면, 당신은 그에 반항해야 한다. 반항은 나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상에 맞서 반대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어도, 상사던 후임이던 반항하는 마음은 있을 수 있다. 누구나 생각이 다른다. 윗선의 생각이 아래서도 똑같을 수는 없다.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일병인 레이번은 상사와 대위에게 '자신의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미션'에 반항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라이언 일병 또한 장비를 챙기고 떠나라는 대위의 말에 반항한다. 군대에서 특히 '전쟁 중 명령 불복종은 총살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군법에서는 즉결 총살이라는 조항은 없으며 군형법엔 지시 불이행도 없다. 아무리 군대라고 하더라도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군재판을 받아야 결정할 문제다. 6.25 전쟁 당시 전신이 남쪽으로 밀리면서 우리 군의 전선 이탈자들이 늘어나면서 약 1년간 시행했다가 1951년 폐지된 법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민주 국가에서 재판 없이 즉결 처분하는 국가와 군대는 없다. 즉, 제 아무리 명령 불복종이라고 하더라도 복종하지 않은 죗값을 목숨으로 대신할 수 없고 법치주의 원리에 따라 재판에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봐야 할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치 원리'이다. 나의 주장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그른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아버지의 말보다 아들의 말이 옳을 때가 많고 할아버지의 말보다 손자의 말이 옳은 순간도 있다. 선생의 말이 옳을 확률도 있지만 학생이 말이 옳았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서 상대가 혹은 자신이 '오류'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비판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언론 통제나 정부 홍보에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국민을 기르기 위해 독재 정권에서의 1번 매뉴얼은 '우민화 정책'이다. 국민이 바보가 되어야 다스리기 쉽다. 정치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착하다'라는 말 만들어낸 '수동적이어라'가 갖고 있는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본능이다. 자신 혹은 자신의 주변에 해가 된다 싶은 일에는 닭이나 몸집이 작은 강아지도 날개를 펴고 송곳니를 들어 올리는 법이다. '국가'도 '형'도 '선배'도 '선생'도, '부모'도 완전하지 않다. 일방적인 관계란 없다. 누군가가 발톱을 내세운다면 제 아무리 나보다 몸집이 커다란 것에도 자신의 표현은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지키는 것이 '선행'이고 착한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그런 힘을 그리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윗선이라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문해력을 기르자. 혹시 누군가가 당신을 착하다고 말한다면, '시키는 대로 잘하는구나' 혹은 '너는 내 말에 복종을 잘할 것 같다'는 의미다. 결코 칭찬이 아니다. Kind나 Polite는 착하다는 의미로 번역이 되지만 우리가 말하는 수동적 의미는 아니다. 당신은 어차피 착하지 않다. 겨우 매몰비용으로 얻어낸 그 깟 허울을 벗자. 노예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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