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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1. 2021

[수필]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_인생수업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거나 녹녹지 않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릴 때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다지 큰일이 일어날 법하지 않던 무난한 인생도 시간이라는 대양에 놓여 있으면 거친 파고를 몇 차례는 넘기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강요했는지 모른다. 책 제목이 '인생수업'이다. 모든 사람들이 단, 한 번씩 겪고 돌아가는 인생은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처음 겪는 일에 시행착오는 당연하지만 우리가 부모 곁을 떠나 부모가 되는 순간 그 어디에도 물어볼 때도 기댈 때도 없어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립하여 스스로 일어서 있는 일이다. 쓰러지고 싶어도 두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는 자녀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두 다리 힘줄에 힘을 불끈 들어 올린다. 뭐든 혼자 서서 잘 해내고 있는 어른들도 모두 처음 겪어보는 오늘을 맞이 한다. 어디에 배울 곳이 없을까. 인생수업은 어른을 위한 수업이다.

서점을 갔다. '법륜 스님 책 전부 다 주세요!' 항상 서점을 가면 한참을 둘러보고 나서야 하는 성격이지만, 그날은 들어가자마자 점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점원은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수북한 책 더미를 가지고 왔다. 카드를 꺼냈다. 일괄 결제를 마쳤다. 내가 법륜스님의 책을 모두 구매한 이유는 '불교신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종교가 없다. 나는 매일 일정한 거리를 운전하여 간다. 대략 20분의 거리를 운전하게 되면 항상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켜놓는다. 이것은 나의 일종의 루틴이다. 꽤 장거리를 가게 될 때는 오디오북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20분 정도의 거리면 즉문즉설 한 편내지 두 편 정도를 볼 수 있다. 이것을 어쩌다 보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매일 같이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다. 법륜스님을 알기 전에 나의 사고방식과 알고 난 뒤의 내 사고방식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달라졌다. 그런 그를 보고 어떤 이들은 '종북좌파'라는 '땡중'의 타이틀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들은 분명 그의 이야기를 몇 편 정도 봤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정치적이지도 전혀 종교적이지도 않은 강의다. 그는 실제로 뵌 적 없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강의에는 모순이 많다. 아내에게는 남편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남편에게는 아내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가 본처이니 아들을 양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가 원래 주인이니 남편을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극되어 보이는 논리를 각자 사람들마다 다르게 설명해준다. 그런 모순 덩어리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떡여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처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생신 선물로 어떤 책을 선물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받았다. 뭐 대충 설명하자면 이것저것 많다. 하지만 간단한 검색만으로 금방 찾을 수 있는 내용의 책 제목이나 알려 드리는 것은 나를 신뢰하고 여쭤 보신 것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두 번은 더 읽었던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3번째 정독했다. 이 책은 우리 어머니들에게 선물해드리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밖에도 몇 가지 책은 더 있다. 앞으로 2~3일 간 꾸준하게 어머니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거나 어른들이 읽으면 치유될 만한 책들을 재독 하고 리뷰할 예정이다.

나이가 들어감에는 슬픔이 있다. 파릇파릇한 청춘이 저물고 시들해지는 계절을 맞이한 그들을 위로하는 말은 '젊어 보인다'가 아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인 듯하다. 뉴질랜드에서 생활할 때,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살았다. 아시안은 거의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 시골 동네에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상상도 못 할 만한 고풍적인 삶이 지금도 존재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중절모에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지팡이 쥐고 와이프의 선물을 산다고 3불짜리 가짜 장미꽃과 happy birthday 70라고 적힌 2불짜리 생일 카드를 카운터로 내려놓으신다. 2불짜리 동전 두 개와 50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오래된 지갑에서 깨내어 계산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의 생일을 위한 선물이라며 간단하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는 4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10년 전 일하던 곳에서 겪었던 내용이다.

책은 행복, 생로병사, 슬픔, 인연, 인생의 후반전, 노년의 차례로 수업을 진행한다. 에필로그에는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사실 이런 좋은 내용은 앞서 말한 유튜브의 '즉문즉설'에 이미 공짜로 나와있다. 관련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몇 권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종이 책으로 소장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이미 겪은 일 따위와 생각 따위를 굳이 일기장에 적어 놓는 것처럼 무형의 산물을 만질 수 있는 유형의 산물로 바꾸어 소장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나이가 50대를 넘어서고 60대를 넘어서고 있다면 분명 자식으로서는 알지 못하는 몇 차례의 커다란 굴곡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을 나이다. 그것에 대한 자식 된 마음으로 공감과 위로를 하려고 해도 결코 쉽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을 조용히 선물함으로써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께 삶에서 얻는 부담을 조금 더 현명하게 해결하고 가벼이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진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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