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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5. 2021

[수필] 시간의 치사량을 충분히 맞아가며

지친 줄도모르고 지쳐가고 있다면 독후감

 시간의 치사량을 충분히 쏘여가며 서서히 죽음으로 가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가 어제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꾸준히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쏘이며 하루를 살아간다. 일생이라는 긴 선에서 찰나의 하루 정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적은 양의 독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고 꾸준하게 축적되는 반복적인 소량의 독으로 치사량에 이르게 되어 죽을 수 있다. 태어남과 동시에 시간이라는 독약을 꾸준하게 맞이하며 죽음으로 내달리고 있는데 지치는 것도 모르고 바쁘게 내달릴 필요는 전혀 없다. '지친 줄 모르고 지쳐 가고 있다면'이라는 제목은 해당 책의 소주제다. 지금 나에게도 가장 필요한 위로 같다. 따지고 보자면 나 혼자 겪는 일이 아닌 일들을 겪어가며 궁상떨며 너덜너덜한 정신과 육체를 일으켜 좀비처럼 걸어 나간다. 

 어차피 매 순간을 사망하고 있는데 굳이 힘들고 지쳐도 버티고 앞서 나갈 이유는 없다.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글을 읽어가며 조급하던 마음의 속도를 낮춘다. 아무리 늦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최선의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운전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수는 없다. 밟은 브레이크의 횟수가 잦아질수록 목적지로의 시간이 늦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험은 떠올려보면 기껏 해봐야 5분 먼저 도착하느냐, 아니냐의 수준이다. 큰 의미가 없는 차이에 목숨을 담보로 브레이크 없이 내달라기겠다면 누가 말리지 않겠는가. 지금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달려가 봐야 몇 분 일찍 갈 뿐이야'라고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의 매력은 여기서 충분히 얻는다. 새벽 4시 반, 책의 뚜껑을 열면서 조용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작가로부터 위로받는다. 글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책의 장점이다. 아마 저자가 자고 있을 시간에 나는 그를 깨내어 위로를 받는다. 읽다가 괜찮은 부분이 나오면 몇 번을 뒤로 돌아가서 위로받는다. 말하는 자는 불평이 없다. 예전에 정말 괜찮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의 주인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조용히 차분하게 오래된 친구처럼 위로해주던 그는 나를 위로해 주던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자가 나에게 위로하던 시간은 충분히 혼자서 사색하고 떠올리고 하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과 누군가를 대할 때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유쾌해 지기를 바란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그가 나와의 시간에 충분히 편안해질 수 있도록 내가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상대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최대한의 지식을 내뿜으며 단순히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경계감을 무너뜨리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시간이 흘러가며 나의 본모습과 생각을 열어간다. 어쩌면 진짜 생각이 새어나가는 데는 수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허물기 따위의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시간 소모 없이 그 사람의 내면으로, 혼자만의 생각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가 써놓은 글을 보는 일이다. 멋지게 차려 잎은 SNS의 사진들로 봐서 그는 나와 크게 다른 사람 같지만, 속을 열어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과 비슷한 농도의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이겠지.

 책이 하는 위로에 충분하게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사색의 시간이 남았다. 여백의 미처럼 낭랑하니 남은 아침 시간에 그의 이야기를 잣대로 내 삶을 이리저리 갖다 덴다.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동생과 나눠 먹던 과자의 양이 달라 보인 것처럼 왜 내 것은 항상 작아 보이는지 쥐고 있는 것에 불만이 많다. 1g이라도 적으면 손해를 보는 것 마냥 악을 쓰고 양 손의 저울로 미세하게 가늠하던 과자처럼 사실상 그것이 나에게로 왔을 때 작아 보이는 건, 결코 절대 값은 아닌 듯하다. 또한, 조금 미세하게 적으면 또 어떠한가. 이런 류의 책을 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역사, 시사, 상식, 소설류의 책을 자주 읽다 보니 이런 류의 책이 가져다주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위로' 따위는 패배자들이나 받는 거야"라고 스스로 강한 척 외면하던 이런 책들이 서서히 나에게 스며들어 와 있는 걸 보자면 단단해 보이려 일상에도 최선의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하다 더 이상 지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지친 줄도 모르고 지쳐가고 있는 나에게 1시간 반 짜리 적잖은 보약 같은 선물을 해두고 충분히 혼자 사색하며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조용히 충전이 끝나면 다시 또 소진해야 할 일생들이 줄지어 있으니, 책 장 목 좋은 곳에 이 책을 비치 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휴식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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