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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4. 2021

번아웃 증후군_과거에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게을러지고 매사에 무기력해 진 이유를 따지고 보자면 일상을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던 뇌가 '방전'되고 '소진'되는 현상을 겪는다. '번아웃'이다. 학술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용어로 마치 질환처럼 정의되기도 한다. '태우고 태우고 끝까지 태워버려 사라져 버리자.' 싶은 열정이 끝을 향해 간다. 격투기 게임의 '초필살기'처럼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장렬하게 소진된다. 그리고 끝없는 겨울잠 상태로 돌아간다.

몇 일 전, 내가 가지고 있던 '삼성 버즈 무선 이어폰'이 고장이 났다. 아무리 충전을 해도 작동이 되지 않았고 핸드폰에 연결도 되지 않았다. 충전기를 몇 일을 꽂아놔도 완충됐다는 파란불만 들어왔지 작동되지 않았다. 마치 '니가 아무리 충전 시켜도 작동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간 나를 위해 열렬하게 일해주던 녀석은 내가 다른 이어폰을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자, 혼자서 열심히 배터리의 마지막까지 소진하고 방전된 듯 했다. 녀석을 데리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갔다. 수리를 해주시는 기사 님이 말씀하셨다. "방전 된 거구요.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충전을 했다고 작동되진 않고 내부에 있는 주요 부품 하나를 교환해줘야 해요. 추가 비용이 더 들 수도 있습니다."

"방전이 되면 그냥 충전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의아한 내가 물었을 때, 기사 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전자기기도 방전이 된 상태로 방치하면 번아웃 된다. 스스로를 모두 소진하게 두고 방치하진 않았을까? 번아웃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하다. 전업주부에서 직장인을 포함하여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겪는 현상이다. 이때 나의 이어폰처럼, 다음 사용을 위해 무기한 충전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메인 부품을 갈아 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 행위의 대표로 '멍때리기'가 있다. 사실상 멍때리는 것은 쉽지 않다. 과부하로 돌아가는 뇌의 활동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멍때리는 기간동안 잡생각이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때리는 기간을 주면 대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그 시간을 채워 넣는다. 잊혀졌던 영상이 다시금 떠오르는 '밈'이나 새로운 유행처럼 쉬려고 했던 뇌는 다시 세차게 돌아간다. 이미 잊혀졌건 불안과 후회의 감정을 다시금 불러 일으키며 다시 또 버닝(Burning)한다.

겨우 채워진 에너지를 한차례 소진 시키며 다시 나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봄이 되면서 날씨가 따뜻해진다. 멍때리기 좋은 날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10분도 못 버틴다. 의미없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10분을 순간 삭제해 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흘러보내는 10분은 용서할 수 없다. 남을 위해 기꺼의 1시간 혹은 하루를 내어 놓으면서 나를 위해 그깟 10분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다. 번아웃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가혹한 뇌의 노동을 벗어나고 쉼을 주게 하기 위해 지금을 깨어나게 해야한다. 나는 CALM이라는 명상 어플을 사용한다. 년 6만원 이 조금 안되는 돈을 결제했다. 나를 위한 제대로 된 휴식을 하기 위해 명상어플을 구독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섹터는 '집중하기' 였다. 독서를 하던 무엇을 하던 휴식하기 위해 구매한 어플에서 나는 다시 버닝(Burning)하기를 택한 것이다.

조금 꼰대같은 소리지만 군대에서 이등병이 심적으로 고생한다고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군생활이 편하니까 딴 생각이 들지!' 가혹한 말이지만 일부는 맞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일반화하기 때문에 군대에서의 자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를 갖고 있는 선행자들이 많아지면서 아래에서는 번닝(Burning)하고 끝까지 태우면 또다른 끝을 발견하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마치 신체의 훈련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점까지 맹렬하게 태워 버리면 나의 다음 한계를 발견한다는 스티킹 포인트와도 같다고 한다. 이는 자기계발에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내가 한계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을 맹렬하게 뚫고 내려가면 더 큰 한계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성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에서는 조금 다르다. 가혹한 '갈굼'이나 '스트레스'는 받으면 내성이 생겨 다음 상황에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농도가 짙어지며 축척되고 피로감이 쌓여가게 된다.

"이게 모두 다 너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야."

내가 첫 사회생활을 하던 당시 내 상사가 하던 말이다. 심한 폭언과 욕설을 일 삼으면서 하던 이야기는 이렇게 가혹하게 해야 니가 단단하고 강해진다는 말이었다. 강하고 단단해지는 방법은 꼭 두둘겨 맞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적당히 두들겨 맞지만 또 적당히 불도 쐬어주고 찬물에 넣어 식혀주기도 하면서 아주 미세한 컨트롤이 필수적이다. 강한 명검을 만든다고 쇠망치로 두들겨 패는 일은 가혹한 수준을 넘어섰을 때 반드시 부러지게 되어있다. 첫 직장에서 가혹하게 두들겨 맡기를 수 년을 하고 나름 해당 일에서 중요한 위치로 성장해 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에서 뒤를 돌아보니 나는 그 일을 하고 있지 않고 거기에서 두들겨 맞았던 흔적들은 되려 상쳐가 되어 이곳 저곳에 남아 있을 뿐이다. 번아웃을 겪고 있다면 혹은 자신을 혹사시켜 성장하려고 한다면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때리고 두둘기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다. 적당히 식혀주고 다시 적당히 달궈주고 다시 세차게 때리는 일을 적정한 균형을 갖춰 할 때, 성장과 단단함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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