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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3. 2021

[소설] 뇌와 기억에 관해..._내 이름을 잊어줘

 서귀포 우생당 서점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우생당은 내가 알기로 서귀포에서 가장 큰 책방이다. 하지만 우생당은 단층이고 책의 종류나 필기구의 종류가 많지 않은 조금 규모 있는 동네 서점이다. 제주시로 넘어가도 내가 자주 가는 남문 서적이 가장 큰 서점이고 남문 서적도 2층으로 되어 있지만 조금 규모 있는 서점일 뿐이다. 아이러니하다. 독서량은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제주는 연평균 13.9권으로 전남(6.1권), 부산(5.9권), 대전(5.7권)과 비교해서도 2~2.5배가량 책을 많이 읽는 지역이다. 심지어 2위인 서울(11.8권)에 비해서도 무려 2권이나 더 많이 읽는 곳이다. 평일 독서시간도 39분으로 부산(16.6분), 대전(15.4분)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으로 많고 2위인 서울(30.9분)고 비교해서도 하루 평균 8분이나 더 많이 읽는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연간 평균 독서량이 8.9권이고 중소도시나 읍면 기준으로 내려가면 8권에서 6권까지 내려가는데 그런 의미에서 제주는 책의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대형 서점은 제주도에 단 한 곳도 없다.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종각점을 가면 눈이 휘둥그래 지는데, 사실 그뿐만 아니라 송도나 강남에 있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비롯해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규모 있는 대형서점이 책의 도시인 제주에는 단 하나도 없다. 책에 관한 이벤트도 적다. 그저 소소하게 동네 서점에서 서성이다가 책 몇 권을 집어 나오는 일은 제주인에게 크게 불편하지 않은 듯하다. 제주에도 대형 서점이 있으면 날마다 방문할 것 같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제주에는 대형 서점이 없어 아쉽다. 이 책은 서귀포의 우생당에서 구매했다. 한참을 소설책을 분류해 놓은 책꽂이에서 서성이다. 무언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구매했다. 

 '내 이름을 잊어줘' 이 소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강한 몰입감을 주고 시작한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느슨함도 주지 않고 한큐에 책의 전개를 끝마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책은 사실 작년 봄인가? 여름쯤에 구매했다가 초반을 읽고 한참을 멈추었다가 어제오늘 완독 한 책이다. 나의 서재에는 이렇게 일부를 읽어놓고 완독을 기다리는 책들이 있다. 어떤 책은 반년을 기다리는 책도 있고 어떤 책은 1년도 넘게 나를 기다리기도 한다. 딱! 마침 그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날 그런 책을 집어 들면 단숨에 집중하여 읽어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흥미가 생기기 전까지 그것을 그저 잘 보이는 곳에 모셔두기만 한다.

한 여자가 집으로 간다. 그리고 집을 들어가려고 하자 낯선 부부가 자신의 집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부부는 여자의 입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부부는 여자를 돕기로 했고 그중 아내가 그 여자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놀라운 미스터리와 반전이 펼쳐진다. 관련 소설의 내용을 더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반전이다. 더 이상 이야기해 줄 수 없다. 다만 이야기해 보자면, 무조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성공할 소재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영화나 소설의 일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결코 비슷하게 전개시키지도 않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가며 어설프게 비슷한 이야기를 소재만 바꿔가면서 다작하는 다른 추리 소설이나 미스터리물과는 다른 신선함을 준다. 

 책의 분위기는 무섭거나 하지는 않다. 적당히 무겁고 또 적당히 가볍다. 설정은 뇌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기억과 뇌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우리는 신비롭게도 아직도 뇌에 관해 잘 모른다. 뇌와 기억에 관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어렵거나 하지 않는다. 관점이 여자에서 부부로 혹은 주변 인물들로 적당히 바뀌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의 이야기는 4일의 이야기다.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낯선 부부를 만난 뒤로부터 4일간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가독성도 좋다. 책은 소설 이외로도 분명하게 배우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 지난 8월 23일 나는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은 어떤 기분이에요?"라는 질문에 여자가 대답하는 부분이 나온다.

"쾌속정을 타고 탁 트인 바다를 지나는 기분이에요. 배가 일으킨 포말을 보려고 뒤를 돌아보면 잔잔한 물만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내가 그곳을 지나갔다는 증거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아요." 기억상실증에 관한 이야기를 그날 적어두면서 나는 이런 추가의 말을 덧붙였다.

 사라지는 포말은 지나갔다는 짧은 흔적이지만 그마저 그 공간과 시간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 흔적이라는 것 또한 앞두고 있는 미래와 같은 캄캄한 암흑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들은 내가 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의 공간이다. 어제 또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사실상 모두가 기억 상실의 상태를 마주하고 있다. 나의 과거는 잠시 출렁였지만 앞두고 있는 미래의 암흑과 같이 이내 잠잠해진다. 어디를 지나왔는지는 어디로 가는지를 말하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는 어디서 왔는지를 말하지 못한다. 결국 모두가 과거의 우리에 페르소나를 씌워 자신이 아니었던 마냥 하고 있다. 흔적을 남기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1초를 살다가는 찰나의 인생의 반복을 순환할 뿐이다.

 책은 모든 내용이 스포가 될 것이 뻔하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 이 책을 아무런 기대 없이 읽었던 내가 느낀 흥미를 이 대략의 소개를 통해 사게 될 누군가도 비슷하게 느끼길 바란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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