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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예에서 벗어나라_화이트타이거 in 넷플릭스

by 오인환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추천작인 'The white tiger'를 보게 됐다. 인도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그래도 그 소재가 끌려 보게 됐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꽤 있다. 이 메시지를 모두 적을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느낀 바에 의하면 인도에 있는 다양한 신분제에 대한 내용이었으며 분명 문화적 이질감이 어느 정도 있을 순 있겠지만 이 신분제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또래의 야속에게 '주인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굉장히 어색한 이 칭호는 우리에게 상당히 괴리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단순히 칭호를 '사장님' 정도로 혹은 다른 우리에게 익숙한 칭호로 바꾼다면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비친다.


우리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특별한 이질감을 갖고 있다.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다른 이 제도는 사실상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길러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주인공의 삶은 점차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해방하기를 갈망한다. 봉건적 구습이나 종교적 전통, 무지와 미신에 지배당하던 민중을 근대화 시는 일을 우리는 '계몽'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단순히 문화적 배경과 상식이 근대화된다는 것은 계몽되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계몽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사상을 갖고 비판적 정신을 가지며 스스로의 책임을 위해 행동하는 주체적인 세상을 인지하는 것이다. 부처의 말처럼 그는 신과 인간이 아닌 남들이 자고 있을 때 깨어있는 사람이다. 닭장 속에 갇혀 그 문을 열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길러지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분명 우리에게 필요하다.

커다란 코끼리를 노예 부리듯 부리는 작디작은 인간의 힘은 상대를 '세뇌'시키는 데 있다. 이는 어찌 보면 최면과도 같다.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 어린 코끼리의 발에 무거운 쇠사슬을 묶어둔다면, 코끼리는 자신의 몸집이 주인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주인의 말에 복종하고 저항하지 않는다. 우리의 한계와 가능성을 옥죄는 쇠사슬은 어린 시절 교육으로부터 길들여지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복종받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스스로 자유의지를 잃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닭장 속에 갇혀 있는 노예의 손에 열쇠를 쥐어 주어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는 이런 세뇌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다수의 노예를 생산해 내야 하는 자본주의 원리와도 같다. 반드시 인도에만 있을 법한 이런 원리도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을 깨어 부수기 위해서는 짜여 있는 안정감을 부숴 나가야 한다.

영화가 말하는 바는 꼭 이점을 말하진 않는다. 영화는 많은 부분을 담고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주체적인 삶'이란 내 사상과 맞닿아 있기에 이에 큰 영감을 받았다.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사람은 노예가 되기를 멈춘다.' 영화의 장면 중 인상 깊은 장면이다. 흔히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바깥세상을 모르기에 내가 본 세상이 존재만이 완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을 깨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스스로가 작디작은 세상 속에 갇혀 지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내가 해외로 처음 나갔을 때, 첫 수출을 시작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내 행동을 크게 우려했다. 그들은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근처에서 직장을 갖고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에 최선을 다했다. 나와 그들에게 주어진 삶에 이탈하는 것을 크게 걱정했으며 안전한 자리로 돌아오기를 꾸준하게 재촉했다.

원래 우리가 무언가를 도전하고자 할 때, 주변의 걱정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 아낌없이 조언하며 말하는 이의 옆 자리에 안전한 좌석을 비치해 두고 안주하길 바란다. 함께 노예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에 충직스러운 노예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깨어버리는 일은 꼭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밖으로 탈출한 닭이 꼭 멋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주어지는 적당한 먹이와 안전한 보금자리가 그 목표가 아니라면 그 호기심과 가능성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살인'이라는 비극을 통해 그 해방을 실현한다. 다소 어두운 전개로 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세상을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그 어두운 면을 통과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좋아졌다. 봉건시대의 어느 시대 사람이나 인도의 카스트 사회와 다르게 우리는 언제든지 자유의사로 그 닭장을 빠져나갈 수 있다. 자본주의는 가른 사상과 다르게 노예들에게 언제든지 닭장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쥐어 준다. 다만 적절한 연봉 인상이나 좋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삶에 안주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만들어 줄 뿐이다. '화이트 타이거'는 '백호'로 한 세대 한 마리 정도가 나오는 동물이다. 주인공은 그렇다.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은 다수 중 소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닭과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창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궜으나 '미국 회사'의 아웃소싱으로 돈벌이를 하는 도시에서 성장해간다. 또한 중국의 정치인에게 기생하여 사업 확장으로 성장해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인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앞으로 인도와 중국이라는 동양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며 영화는 마무리한다. 지금껏 서양의 아웃소싱에 의해 성장해 오던 노예근성을 벗어나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며 우리가 계몽하여 주인이 될 것이라는 다짐으로 영화는 마무리한다. 영화는 너무 재밌게 봤다. 개인적으로 인도와 아프리카와 같은 국가에 대한 로망이 있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인도에서 좋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인도의 가난은 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다. 영화를 보자면 인도의 어두운 면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스스로 깨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필연적이다. 산업화, 도시화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 또한 상당 부분 선진화된 경제 시스템을 갖고 나름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해왔다. 인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주체적인 삶을 갈구하는 나의 성향에 상당히 맞는 영화였으며 몇 번을 다시 돌려 볼 의향도 충분히 있다.

영화에서 양치질을 처음 하는 주인공이 거울을 보며 하는 말

'어째서 우리 아버지는 이러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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