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율이가 벌레를 죽였다. 아침에 콩벌레를 발견했다. 어린 시절 손 위에 놓고 장난치던 추억이 떠올랐다. 조금 기억 다니는 녀석을 손가락을 '툭'하니 건들면 '콩'처럼 몸을 둥글게 만다. 지금은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지만 당시에는 녀석을 찾는 건, 학창 시절 지폐를 줍는 것만큼이나 신나는 일이었다. 길을 가다가 커다란 콩벌레를 보고 나면 큰 행운을 만난 듯 기뻐하고 재밌게 놀다가 다시 돌려놓곤 했다. 하율이와 다율이는 제주도에 산다. 벌레를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꼭 제주도라 그런 건 아니다. 벌레를 만나는 것은 인위적이지 않은 일이다. 당연히 자연스러워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겁이 없다. 거리를 봐도 손으로 잡고 차바퀴에 깔려 반이 납작하게 땅바닥에 깔린 징그러운 지렁이를 봐도 손으로 만진다. 아침에 발견한 콩벌레를 소개해 줬다. 어떻게 콩벌레를 가지고 놀았는지도 보여줬다. 하율이와 다율이 에게 '콩'이 됐다고 이야기했더니, 손으로 집어 먹으려고 하는 듯했다. 먹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은 평소 나비와 꽃을 좋아했다. 꽃을 따다 주겠다고 말하면 '눈으로만 봐야지'하고 아빠를 나무란다. 꽃을 결코 못 따게 한다. 꽃이 아프다고 말한다. 결국 '민들레 씨'를 제외하고는 꽃을 꺾어주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 보여준 다율이 의 행동에 식겁하고 놀랐다. 잘 가지고 놀던 다율이가 콩벌레를 땅에다 버리고 '휙'하고 발로 밟는 것이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다율이는 그 뒤에도 한 번 정도 더 비슷한 행동을 하더니 내가 하는 말을 듣는 듯했다. 물론 내가 신경 써서 보지 않는다면 나조차 수많은 벌레를 자동차 바퀴로 혹은 신발 밑창으로 밟아 죽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고 있는 동안 입으로 들어간 곤충을 저도 몰래 삼키는가 하면 콧속으로 호흡과 함께 들어가는 녀석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쿵'하고 벌레를 밟는 행동을 보니 왜 놀라는 것일까. 집에서 전기 파리채로 파리를 죽이는 건 괜찮고 모기를 손바닥으로 내려치거나 거미를 휴지로 '꼭'하고 눌러 죽이는 것은 괜찮은데 '콩벌레'를 죽이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와 돼지, 닭은 당연히 죽임을 당하고 양념에 버무려져 맛있는 식사가 되고 고양이와 개는 아끼고 살펴줘야 한다는 논리를 아이의 교육에 어떻게 대입시킬 수 있을까. 일단, 아이의 교육의 내용을 차치하고 사회통념에 맞도록 아이에게 벌레를 죽이면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 왜 우리는 우리의 모호한 기준으로 죽여도 되는 생명과 죽이면 안 되는 벌레를 나누고 있을까. 잡생각과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율이가 벌레를 밟는 장면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