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회_공정한 경쟁

by 오인환


노무현 정부의 슬로건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다. 역대 정부의 슬로건은 모두 훌륭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말을 가장 좋아하게 됐다. 이 책은 젊은 보수 '이준석' 님의 글이지만, 내가 말하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슬로건에는 '좌'와 '우'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기간에 나는 학생이었다. 정치에는 당연 관심이 없으며 그가 말하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왜 슬로건으로 내걸어야 하는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모와 학교의 보호 속에서 하루하루 자라나던 시기, '원칙과 상식은 당연히 통하는 것 아닌가'하는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조금씩 많아지고 각종 사회경험을 했다. 여러 사회현상을 마주하고서 가끔씩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슬로건이다. 조금씩 사회생활을 할 때마다, 세상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사회적으로 분명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방관하는 공무원을 목도하거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로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도 보게 됐다.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행정을 쉽게 마주하게 되고,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들을 겪었다. 그럴수록 떠올랐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생각만큼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은 공학자 출신 정치인답게, '합리적임'이 최우선 가치인 것이 보인다. A와 B를 입력하면 C가 나와야 하는 합리성과 논리성이 그의 정치 철학인 듯하다. 그의 글은 꽤 다수의 부분에서 공감하고 읽고 다수의 부분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의 제목에도 있는 '공정'이라는 말은 진보와 보수에서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진보의 '공정'이란 결과의 공정이고 보수의 '공정'이란 경쟁의 공정이다.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 국가가 해주고 모든 국민이 동등한 출발선에서 공정한 룰을 지키며 경쟁해 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특히나 경쟁사회를 걸어오고 있는 2,30대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가치다.



다만, 우리의 윗 세대에게 '공정'이란 누구나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던 세대의 입장에서는 그 최고의 가치를 자유와 평등이라고 규정한다. 즉, 모든 국민이 자유가 보장되고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결과에 대한 공정이 속해진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더딘 사람을 이끌어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것이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줄 여력도 더딘 사람을 이끌어 줄 여유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옆 친구보다 낫아야 하는 위기의 식을 갖고 자랐다. 옆 친구의 성적이 떨어져야, 내 성적이 오르고, 옆 친구가 입사를 못해야 내가 할 수 있다. 이는 부족한 의자를 두고 여럿이 하는 일종의 '의자 뺏기 놀이'와도 같다. 내가 양보하는 순간, 나의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항상 있어왔던 시대에게 '여성이라서', 혹은 '남성이라서', 혹은 '수도권이라서', '지방이라서' 등의 명분으로 주어지는 혜택은 '평등'이 아니라 '불공정'에 가깝다.



이런 시대가 성인이 되었고, 그리고 꾸준하게 더 심한 세대가 성인이 되며 유권자가 되어간다. 이 결과가 얼마 전 투표에 반영되었다. 정치에 대한 언급을 웬만해서는 피하려는 나 또한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의 분명했던 시대 변화를 보여줬던 투표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따지기 전,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상식적인' 세상에 대한 일종의 공감이 들었다. 세상은 상식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에 긍정적 평가를 하고 원희룡, 유승민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아마 나의 또래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얼마나 합리적인가, 얼마나 상식적인가로 나눠져 있을지 모른다. 이는 정치적 '중도'와는 다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양당이라고 부르는 정당들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확하게 한쪽 노선을 택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복잡하고 짧은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급하게 형성된 정당의 정체성이 우리에게 형성되진 않았는가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시대가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합리성과 상식의 기준으로 걸러지고 다시 나눠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시작이 되진 않았는 가 싶다.



법인세를 낮추느냐, 올리느냐. 노사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한일관계나 한미 혹은 한중 관계는 어떻게 바라보느냐 따위가 중요한 어젠다가 되어 정당을 판가름하는 일은 젊은 층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기존의 낡은 정치 프레임보다 중요한 이슈부터 민감하게 반응한다. 책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젠더'이슈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젊은 층에 지지를 받고 있는 이준석의 글이다. 그의 생각 중에는 너무나 분명한 엘리트주의(일부 공감하고 일부 위험하다고 생각이 되는)가 있지만 대체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많다. 책은 인터뷰 형식의 글이라 쉽게 읽히고 분량도 적다. 정치인의 책이라는 이유로 다소 리뷰를 올리기 애매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고 리뷰해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20210526%EF%BC%BF213758.jpg?type=w773
20210526%EF%BC%BF213801.jpg?type=w773
20210526%EF%BC%BF213807.jpg?type=w773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육아] 다율이가 벌레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