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랑 대화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때, 책을 읽을 때, 번뜩이는 것들이 스치곤 한다. 순간을 놓치는 것에 대한 묘한 강박증이 있다.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간, 나이만 다른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읽었는지 궁금한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을 소소한 기록하던 수첩은 내것이 아닌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시간을 죽일 던 날보다 몸을 움직여 여행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날은 그런 기록해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긴다. 집에 앉아서 혹은 엎드리고 그런 체험을 책을 통해 얻곤한다. 스마트폰의 영상으로도 얻곤 한다. 간접체험이 이처럼 자유롭게 어디서나 진행되는 시대는 축복같은 일이다. 작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더욱 '온라인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대실 하는 방법 중,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방식은 활자 매체다. 영상과 소리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는다. 언제 어디서든 눈으로 훑는 행위는 쉽게 가능하다.
만 1년 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3,000~5,000자의 포스팅을 올린다. 혼자하던 독백에 점점 사람들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블로그 유입 중 일부가 꾸준히 'My구독'에서 발생했다. 나의 글을 구독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의미다. 어쩔 때는 종종 네이버 메인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꾸준히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가끔 쪽지와 메일로 글을 읽는 독자의 메일이 오기도 한다. 내 글에 '조회수'가 높아지고, '좋아요'가 많아지면서 시장이 필요한 출판사나 마케팅업체의 연락을 받는다. 단순히 글을 읽고 생각을 표현해 내는 단순한 취미 활동에 영향력이 붙기 시작했다. 이유가 어찌됐건, 더 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나 또한 많은 자극을 받고 주기도 한다. '인플루언서'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기껏해봐야 1만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라는 '비인기 주제를 가지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만족한다.
독서를 할 때, 혹은 삶에서 최대한 나만의 철학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긍정, 감사, 균형'이 그렇다. 여기서 '균형'은 쉽지 않다. 내 리뷰는 여러 시각으로 다양하게 보려는 시도들이다. '친일은 나쁘다.'라는 시각과 대조되는 '친일은 나쁘지 않다'라는 시각에도 귀를 기울여 본다. '환경오염의 심각성'과 '과도한 환경문제'라는 시각, 혹은 '탈핵문제'나 '원자력의 장점'등 상반되는 시각을 모두 갖는다. 그러다보면 의도치 않게, 다수에 의해 지탄 받을 만한 리뷰가 나오기도 한다. 나는 다만 '이런 시각으로도 생각해보고, 저런 시각으로도 생각해보는 균형적인 시도'들일 뿐이지만, 조회수가 높게 나오는 글에는 여지없이 비판적인 댓글이 많이 달린다.
사람은 올 곧은 하나의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일관적인 주장을 꾸준하게 해야,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로 부터 응원을 받고 거기서 권력과 힘이 생겨난다. 하지만 나는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쓰고자 한다. 얼마전 달렸던 댓글처럼 '완전한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울의 지시침이 숫자 하나를 완전하게 가르키기 따지는 앞뒤로 사정없이 흔들리곤 한다. 그런 흔들림 뒤에 결국 균형을 찾아간다. 그런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법륜스님'의 강연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과 갈등이 있는 아내에게 스님은 이렇게 조언을 했다. '아내는 남편의 말이 모두 다 맞소이다! 하고 살아야 합니다.' 얼핏, 여성에게 불리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다음 순서에 나오는 아내와 갈등이 있는 남편에게 '아내의 말이 다 맞소이다! 하고 살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 외로 '시어머니 말씀이 다 맞소이다!', '며느리 말씀이 다 맞소이다!' 스님은 모순되는 조언을 꾸준하게 했다. 깨닳았다. 우리는 일관적인 해답을 갈구하지만, 사실 모든 해답은 상대적이다.
얼마 전, 몇 자 되지 않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기대평에 인스타그램 '좋아요'가 720개가 달렸다. 하지만 다음날 막상 올렸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라는 글은 5,700자가 넘는다. 이 글에 좋아요는 '506개'만 달렸다. 굉장히 신경써서 쓴 글이 조회수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본질을 생각해보곤 한다. 묵묵히 하던대로 진행해야겠단 생각을 다시 한다. 처음 인터넷상에 글을 올렸을 때, 그 한 주 동안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건 '나'뿐이었다. 수 주가 지나고 나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키워드가 따로 있다는 사실 을 알게 됐다.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고 어떤 이슈를 다뤄야 하는지 대략적인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슈를 따라다니지 않기로 했다. 꾸준하게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가끔 내 글을 '자주 읽어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면 그들은 정기 구독하는 일간지처럼 어떤 주제를 막론하고 정독해주신다. 조금씩 조금씩 브런치 구독자, 인스타 팔로워, 네이버 이웃이 쌓여 간다. 해당 내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난다. 분명한 것은 자의에 의해서 시작한 글쓰기지만, 결국 타의에 의해 지속성이 생겨났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읽고 쓰기'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본질만 붙들고 있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