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좋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독서를 해야한다고 한다. 성공하기 위해선 독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본질'이다. '명상'에 대한 글을 올리고 얼마지 지나지 않아 메일을 받았다. "명상을 해보고 싶은데, 명상을 왜 해야 하나요?" 질문에는 본질이 빠져 있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은 하지 않는게 맞다. "왜 더운 여름 '히터'를 켜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왜 추운 겨울 에어컨을 켜야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누군가가 그것을 하고 있을 때 '왜 그들은 그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호기심을 갖는 건, 건강하다. 하지만 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 또한 그것을 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본질이 빠진 일이 사회에 많다. 본질이 없는 사회는 철학이 없는 사회다. 철학과 본질이 없으면 분위기에 따라 크게 움직인다.
대체로 독재정권들은 우민화정책을 취한다. 독서는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어떤 주제에 수많은 근거와 예시가 들어간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읽는 듯 하지만 300 페이지 30만자가 넘는 여러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단락과 단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수학능력시험'의 영어와 언어가 묻는 질문은 '화자가 주장하는 바', '필자의 의도', '글의 목적',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 등이 그렇다. 독서력이 '생산성'에 직, 간접으로 영향이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알고 있다. 능력있는 인재를 양상하는 방법은 '문해력' 즉, 글을 읽고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에서 찾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 뿐만 아니라 대다수 주요국가의 교육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만 우리 교육이 토의나 토론을 통해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아닌 '글'을 통해 파악하는 교육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특별한 뿐이다. 우리 사회는 더욱 '글'의 능력이 중요한 사회다.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대는 교육 필수 과목에 교련과목이 존재했다. 특히 개항 시기(1910년)에 2,200개가 넘는 학교중 1940년에 391개만 남아 일제시대 30년간 82%의 학교가 폐교했다.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미, 서구 선진국들은 '귀족학교'라고 불리는 학교가 존재한다. 우리의 경우 1974년 부터 학교 간의 학력 편차를 줄이기 위해 '고교평준화'를 실시했는데, 이로인해 교육의 질이 낮아지고 하향평준화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독재정권이 들어서면 정부는 '본질을 파악하는 다수'를 가장 경계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예로 들자면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해외에서 연수하거나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 의사, 교사 등을 추방시키고 수도에 있는 병원과 도서관을 제외하고 지방에 있는 병원과 도서관을 모두 폐쇄시켰다. 본질을 모르는 이들은 '선동과 세뇌'에 최약하다. 즉,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인 태도'를 가질 여지가 많다.
얼핏, 보이는 사회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연예계 기사나 스포츠 기사에 열광하며 사회문제를 외면하기도 한다. 이런 일종의 '물타기'에 취약한 이들을 양산하고자 독재정권은 '우민정책'을 실시하고 '스포츠를 장려'한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뒤, 도쿄 올림픽이 개최한다. '무관중'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적자사업'을 스가 정권은 포기하지 못한다. 일본 명문 사립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와세다 대학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학 학사를 공부했 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2018년 The Times Higher Education World Univerity Rankings 대학 평가에서 와세다 대학교는 세계 601~800위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물론 도쿄대나 교토대처럼 초일류 대학의 랭킹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최고 수준의 교육 수준을 자랑하던 일본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의아한 수준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일본 전국적으로 매년 500개의 학교가 폐교하는데, 이를 조금 자극적으로 보자면 매일 1.3개의 학교가 문을 닫고 있다고 보면 된다. 현재싸지 7000개가 넘는 학교가 폐교했는데 급격한 인구감소에 따른 폐교라고 말하기엔 그 숫자가 급격하다. 일본은 거의 독재 정권과 다름없는 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샘이다.
중간고사 시험에서 90점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바라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매순간 상황에 대한 본질을 파악해야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를 마주하게 된다. 누구를 만날 것이고, 왜 만나야 하는지, 어디를 가야하고, 왜 가야하는지, 무엇을 말해야하고, 왜 말해야하는지.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은 '학교'가 아닌 이후 부터 더 중요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주 기본적인 본질파악 능력'은 실제로 사회로 나간 뒤부터 더 끊임없이 필요하고 요구된다. 오늘 아이 책가방에 책이 세 권이 들어갔다. 무엇 무엇이라 옹알거리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보여줘야겠다면서 서재에 있는 책 몇 권을 가방에 담아갔다. 물론 아직 책보다 유튜브가 더 재미있을 나이이다. 나에게도 유튜브를 보고 싶다고 조르곤 한다. 그럼 군말없이 틀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옆에서 책을 편다.
아이에게 물려 줄 건 없다. 다만, 만에하나라도 물려줘야 한다면, 책 읽는 습관 정도 물려주고 싶다. 모든 본질을 부모가 나서서 알려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머리 큰 자녀에게 묻지도 않은 부모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일 뿐이다. 본인이 필요한 지식은 '부모'가 아닌 '책'을 통해 본질을 파악해야한다. 아버지의 말보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말이 더 옳고, 선생님의 말보다는 '다수의 책'의 말이 더 옳다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아이가 보는지 보지 않는지 모르지만 꾸준히 아이들의 가방에는 책이 들어가고 나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는다. 항상 책 옆에서 잠을 자고 함께 다닐땐, 책을 옆에 끼고 있는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무의식 속으로 책의 중요성을 강요하고 싶은 욕심은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