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결핍이 가장 많은 걸 채우는 법이다. 현재 '유현준' 작가 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란 책을 읽고 있다. 건축가라는 본업을 갖고 있는 그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걸 느낀다. 의도치 않게 최그 읽는 책 중에는 '채움'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다. 과연 공간과 채움. 우연스럽게 읽게 된 책이지만 공간과 채움이라는 대조되지만 어딘가 비슷한 느낌의 단어에 생각이 많아진다. 비워져 있다는 것은 가득 채울 가능성이 100%라는 뜻이다. 결핍이란 부족함 자체일 수도 있지만, 필요한 부분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리터의 물은 작은 종지 그릇을 채우고도 남는 넉넉한 양이지만, 커다란 수영장에 담으면 겨우 바닥도 적시지 못하는 양이다. 가득 찬다는 것과 비어 있다는 것에는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공기로 가득차 있는 공간'은 얼핏 '비어있는 공간'이고, '비어 있는 공간'은 다시 '공기로 가득찬 공간'이기도 한다.
'정다연 작가' 님의 글인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 수필을 보자면, 그녀의 어머니의 결핍은 그녀를 가득 채우게 했다고 한다. 결핍을 결핍 자체로의 의미로 둔다면 그것은 불행에 가깝지만, 그것을 채울 가능성의 상태로 둔다면 그것은 행복에 가깝다. 내가 뉴질랜드에 일하던 시기, 옳지 못한 사이클에 탔던 적이 있다. 나는 저녁 9시 부터 아침 9시까지 '바'에서 유리컵을 닦고 재고창고에서 술을 꺼내 냉장고에 채워 넣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유학하는 도중 생활비를 벌기 위한 시간이 늘어나면서 '바'에서 일이 끝나면 근처 '아파트 청소'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Grammar School'을 청소하러 가야 했다. 청소가 끝나면 다시 한 시간을 집으로 가서 씻고 학교 수업을 들었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정원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보니 하루 일하는 시간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일과와 일과 사이에 비어있는 어설픈 1~2시간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하지도 못하는 어설프게 비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침대에서 자는 시간을 줄여도 용돈을 넉넉하게 벌 수 없었는데, 그 주에 사용할 정도의 돈이 겨우 벌리는 정도라 하던 아르바이트 중 단 하나라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 때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정리를 하고 하나의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구하면 더 많은 돈을 벌고 넉넉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한번 시작된 사이클은 1회로 쉽게 정리되지 못하여 악순환이 반복됐다. 무언가 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얼핏 좋아보이지만 그러지 않다. 아예 텅텅 빈 상태라면 쉽게 풀타임 직업을 구하여 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과 저 일이 가득찬 비효율적인 '바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직업을 꽤 오랫동안 구할 수 없었다.
빈 상태는 이미 완전한 상태이기도 하고 언제든 완전한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상태다. 왼쪽과 오른쪽를 같은 무게로 맞추기 위해 저울의 양 끝에 추를 달아 놓는 일이 아무리 완전한 균형을 잡는 일이라 하더라도, 가장 완전한 균형은 이미 아무런 추도 달려 있지 않은 '무'의 상태일 때 완성되어 있는 법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 모두의 상태는 '공'의 상태였다. 여기에 쾌락과 불행을 한숟가락씩 번갈아 넣으며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부처의 가르침은 쾌락 한숟가락을 넣지 않는다면 굳이 '불행' 한 숟가락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도 쾌락이지 않고 불행이지 않은 감정의 동요가 적은 상태를 '해탈'이라고 한다. 불행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쾌락에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일에는 크게 기뻐한다. 슬픈일에는 크게 슬퍼한다. 실제로 좋은일에 나쁜 일을 생각하고 나쁜일에 좋은 일을 생각하는 것은 감정의 '공'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읽어야 할 책들을 산더미 같이 쌓아둔다. 아마 읽지 않은 이 책들이 2주 정도 뒤 부터는 이미 읽은 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영혼이 가득 담긴 문자를 담은 '책'이라는 매체를 2주간 흡수하고 나면 영혼이 빨린 종이 조가리가 다시 서재에 들어 앉을 것이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독서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읽을 책을 쌓아 놓고 제목을 훑어보면서 혼자서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