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감각이라는게, 들어왔다 나갔다. 반 쯤 제정신으로 살다가, 다시 반쯤은 미친 사람처럼 산다.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다가 언젠가는 현실이 감당되지 않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말했으면 하다가, 언젠간 다시, 사실은 이 모든게 '진실'이라고 말했으면 한다. '나는 없어, 나는 없어, 나는 없어' 철없는 아이의 중얼거림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 어린 아이의 눈을 쳐다 보지 못하고 촛점없이 공기를 바라본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며 도를 넘어도 말리지 않았다. 나의 일기는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사실이라는 것을 기록하기엔 나중에 들쳐 볼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돌려봤던 드라마를 다시 돌려본다. 똑같은 대사에 똑같은 배우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반응을 하고 있다.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는 보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 어떤 것에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같은 드라마를 돌려본다. 같은 장면에 '피식'하고 웃다가, 이내 무표정이 된다. 드라마 영상 빛이 동공을 스치고 뒤통수로 빠져나간다. 한참이 흘러서야 내가 놓진 장면이 1편은 족히 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손가락으로 뒤를 '스르륵' 넘기다.
정말 어려울 것 없이 영상은 '스르륵' 넘어간다. '이처럼 쉽게 돌릴 수 있구나.' 생각한다. 예전에는 듣지 못하던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 그래도 괜히 일부러 시작하진 않는다. 노래 하나가 하루 전체를 망가트릴 수 있다. 하루 전체가 내일과 다시 한주를 망가트리고 한달을 망가트릴 수 있다. '멍'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불필요함'으로 채워가며 순간과 순간을 넘긴다. 나를 속여 넘어간다면, 대상인 '내'가 스리 슬적 넘어가 줄 것이라고 착각한다. 예리하게 사소한 흔적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허를 찔렸다. 언제나 나에게 '걸리고 만다.' 어차피 이럴 걸, 아마 내일의 나도 다시 나를 속이는 일을 시도할 것이다.
세상에는 수 초마다 상상치 못한 비극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만 2분에 한 명 씩 사망한단다. 그들에 비하면 나은 편일까 생각한다. 하지만 행과 불행의 기준은 자신이 세우는 것이지, 남에게 세우는 것이 아니다. 남의 불행을 빗대어 조금 위로를 받아보려다 다시 제정신으로 들어온다. 모든 면에 양면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일에 양면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이 일에 나혼자 '극락'으로 가기에는 '함께' 얽혀 있는 이들이 있다. 그것을 외면하려는가. 낮잠을 자지 않은 아이들이 곤히 잔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거나 딴소리하는 어린 아이가 갑작스럽게 똑부러지게 자기 마음을 표현할 때면,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이며 제정신과 현실이 삽시간에 들어와 앉는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지금도 귓속이 멍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