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50년 된 책을 구매했다_경부고속도로

by 오인환

'이 책은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드실 거에요.'

이런 류의 것들을 좋아한다. '신상'보다 '역사'를 가득 담고 있는 것들에 매력을 느낀다. 50년이 넘은 책을 구매했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7일 완공됐다. 이 책자 또한 같은 날 발행된 책이다. 이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건설된 고속도로로 지금도 한해 3억 3천만대의 자동차가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경제개발 5개년 기간 개설된 도로로 최초 아시아와 유럽의 경제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한 아시안하이웨이 중 하나다. 이는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핵심도로이기도 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대동맥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관련 책자와 신문 그리고 이 책을 함께 구매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빌게이츠가 350억에 낙찰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첩을 보고 누군가는 돈이 많으니 허튼곳에도 돈을 쓴다고 이야기 했지만, 나는 반짝 반짝 빛나는 새 수첩보다 500년이 지난 이 수첩이 가격이 더 비싼 이유에 대해 게이츠의 구매에 공감한다.

우리가 구매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구매와 동시에 감가상각이 일어난다. 물론 부동산이나 주식 혹은 채권 가격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돈을 사용하는것은 투자와 소비로 나눠진다. 소비의 사전적 의미는 '돈이나 물자, 시간, 노력 따위를 들이거나 써서 없앰'이다. 하지만 투자란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돈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것'을 말한다. 둘 다 돈과 시간을 쓴다는 점에서 공통점은 있지만 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 그 목적이 분명하게 다르다. 자동차는 구매와 동시에 감가상각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이는 돈을 사용함과 동시에 그것의 가치가 오로지 없어지기만 할 뿐이다. 다만 '역사성'을 띄고 있는 것들은 감가상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다는 것이 어떤 것에는 '악재'가 되지만 어떤 것에는 '호재'가 되기도 한다. 빌게이츠가 다빈치의 수첩을 구매한 것은 1994년이다. 그리 오래된 역사적 유물을 구매하고 그는 벌써 30년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희귀해지고 가치가 올라가는 이런 일은 성장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저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어제보다 하루 더 나이 많아지는 일은 시간이 보장해주는 투자대상이다. 시간은 뒤로가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물품들은 값어치가 떨어지지 않고 오로지 올라가기만 한다.

사실 이 물건을 되팔기 위해 구매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류를 좋아한다. 역사의 흔적을 갖고 있는 물건들말이다. 흔적이 없는 새제품은 영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중고 물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런 모순이 언제나 처럼 존재한다. 가끔 새로운 책을 구매하면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게 읽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조심히 입는 옷이나 새로운 자동차를 깨끗하게 타기 위해 비닐시트를 벗기지 않는 일들도 쉽게 본다. 손 때가 묻을까봐 조심히 만지는 스마트폰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에는 본질이 빠져 있다. 그것의 존재 목적은 '사용'에 있지 '보존'에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 의해 목적이 오염되기를 매우 기피한다. 말끔하게 공장에서 나온 것과 같은 새것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다른 누군가의 것과 바뀌었을 때, 쉽사리 구분하기 어렵다. 결국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키우면서 누가 자기 강아지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주인처럼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수 년 전 안주머니에 들고 다니던 만년필이 구매한지 일주일 만에 아스팔트길에 떨어져 찌그러진 적이 있었다. 반짝 반쩍거리던 만년필에 깊은 홈이 파여 있었다. 이상하게 그 뒤로 그 만년필에 애착이 더 갔다. 아마 이것은 새상 천지 아무리 비슷한 만년필과 섞어도 언제나 내것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흔적은 그렇다. 역사의 흔적도 그렇다. 흔적이란 정체성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언제나 새것이다. 지금 당장 프린트해 낸다면 반짝 거리는 흰 A4용지에 언제든지 내용을 출력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의 가치는 A4용지 값도 받지 못한다. 이면지로나 활용할 수 있다면 몰라도 이렇게 아무런 흔적 없는 물건을 구매하는 이들은 없다. 경부고속도로에 관한 책을 구매한 이유는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인 경부고속도로에 관한 책을 언제든 나의 소유로 읽을 수 있다는 권한 갖게 됐다. 앞으로 이런 오래된 것들을 꾸준하게 모으고 수집할 생각이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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