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발] 왜 써야 하는가_쓴다 쓴다 쓰는대로 된다

by 오인환

인간의 심리란 본디 문자화 할 수 없다. '슬프다'라고 치부하는 감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중 비슷한 상태에 대해 '슬프다'라는 형용사를 대표로 사용하고 그런 일에 '슬픔'이라는 명사를 지었을 뿐이다. '밉다'라고 치부하는 감정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이중 비슷한 상태에 대해 '밉다'라고 형용사를 사용하고 '미움'이라는 명사를 지었을 뿐이다. 자기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이에게 개 또한 증오의 감정을 표출하고 퇴근 후에 들어오는 집주인을 바라보면서는 기쁨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한다. 증오와 사랑이라는 감정이란 우리 내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호르몬이 다른 호르몬에 비해 일정 비율 이상으로 올라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햇볕을 통해 얻는 여러 에너지원은 '호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이 되어 어떤 순간에는 조금만 방출되다가 어떤 순간에는 과도하게 방출하기도 한다. 50:50이 미움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상태라면 49:51은 미움의 상태일까? 사랑의 상태일까? 48:52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누군가가 하늘을 그리키며 저기가 '하늘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추상적인 하늘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어도 정확히 지상 몇 미터 부터 하늘로 치부해야 하는지, 혹은 이 높이는 해발로 계산해야하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이 정의 내리는 것들은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의들이 많다. 가장 높은 산이라는 '에베레스트'는 가장 높은 산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해발 8,848m인 에베레스트는 분명 가장 높은 산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산의 높이를 해수면으로 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가 높은 산처럼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와도 같다. 에베레스트가 높은 이유는 에베레스트의 산줄기가 상승하는 초입이 이미 3,484m의 고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게 내가 서 있는 평지에서 부터 얼마나 높은지를 보며 높이를 가늠하지 해발을 따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낮은 도시는 팔레스타인의 예리코라는 곳이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258m로 만약 이곳에 해발고도 한라산 정도의 산이 있다고 해도 실제 이 산의 높이는 덕유산의 해발고도와 비슷하게 된다. 평지로부터 솟아난 것을 산의 높이로 계산하게 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킬리만자로가 된다. 또한 산의 뿌리에서 높이를 재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하와이에 있는 마우나케아산이다. 이 산의 높이는 뿌리에서 10,211m로 매우 높지만 해발고도는 에베레스트의 절반인 4,207m이다. 또한 완전한 구가 아닌 지구의 특성상 생각하여 지구의 중심에서 가장 높에 솟아 있는 것을 높은 산이라고 치자면 에콰도르에 있는 침보라소산이 가장 높다.

인간은 탄생 이후로 부정확하고 불명확한 것들을 정의하고자 애쓰곤 했다. 가령 접촉 사고에서 누구의 과실이 더 큰지는 어떤 사람의 죄의 경중을 따지는 일 또한 '법'이라는 절대적인 것을 다루는 듯 하지만 굉장이 인간적이고 허술한 정의들 투성이다. 여기에 우리가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것이 사람의 생각이다. 우리의 생각들은 '좋다', '나쁘다'라고 규정되지만 그 어떤 것도 정확한 기준점이 없다. 이런 불완전 것들이 머리 속을 떠다니며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증폭시킨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성에 대하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불완전한 것들은 완전하게 정리함으로써 안정감을 얻는다. 가령 자연스럽게 무성한 정원의 풀을 인위적으로 뜯고 재배치하여 정리하거나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을 정리해가며 일반화하고 정의해 버린다. 우리 사회에 소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불안전한 것들을 종이 위의 활자로 정의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의 가장 주요 효과로는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혹은 책을 보고 애매하게 가슴 속에 스믈스믈 올라오는 어떤 오묘한 감정을 문자화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갖는다. 인간이 심리는 불완전한 것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음 속의 불완전성을 정리할 수록 우리는 우리가 이루고저 하는 것들에 집중하여 그것을 이뤄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쓰는 대로 된다'는 것 또한 마법과 같은 현상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방송인 '유재석' 님의 노래 '말하는대로'와 같이, 누군가는 말하는대로 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쓰면 이뤄진다고 하고 누군가는 상상하면 이뤄진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마법이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들 중 하나다. 우리의 뇌에는 망상활성화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은 우리의 뇌가 기록하여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어떤 문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무의식이 깊은 곳에 우리가 원하고자하는 바에 대한 데이터 입력을 완료하고 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꿈과 현실을 번갈아가며 이루고자 하는 바에 대해 행동하고 반응하게 된다.

요식업계를 대표하는 '백종원' 대표는 최초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급급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철학이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면서 서서히 완성 되어 지는 거라고 말했다. 음식에 대한 철학보다 '돈'이 전부라고 말하던 젊은이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았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니 그런 사람이 되어졌다고 했다. 사람의 말과 글에는 그런 힘이 있다. 꼭 누군가가 묻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여 화두를 던지고 그것에 대해 대답해 낼 수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꾸준하게 정립해 나갈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가 정의 된다면 스스로 이루고저하는 일들에 대해 조금더 명확한 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쓴다 쓴다. 쓰는대로 된다. 그러니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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