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언제나 지금 여기를 살아라

니혼자 부처되면 뭐하노 독후감

by 오인환

얼음은 녹아 물이되고, 물은 끓으면 수증기가 된다. 수증기는 다시 맺히면 물이되고 물이 얼면 다시 얼음이 된다. 바다가 뜨거워지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맺히면 비가 되고 비는 흘러 강이 된다. 식물은 비를 머금고 자라고 동물은 식물을 취해자라고 인간은 이 둘을 취해 살아간다. 인간은 배설하고 배설된 것은 다시 순환되어 바다가 됐다가 구름이 됐다가 비가 되어 내린다. 비는 다시 내가 되고 네가 되기도 하고 이것들은 다시 내리고 바다가 되고 바다는 다시 섞이고 돌고 돈다. 완전히 구분될 줄 알았던 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고 대단한 사람과 별거 없는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길에 핀 잡초와 장미도 크게 다를거 없다.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시작점과 끝점이 멀수록 다르다고 생각하나, 선을 따라 아무리 길게 뻗어가도 두 점이 이어져 있으면 '원'이 되어 극과 극이 결국 같은 모양으로 '악과 선'이 크게 구별되지 않고, 음과 양도 크게 나눠져 있지 않으며, 어제와 내일도 이어져 있고 겉과 속도 모두 양극이 이어져 모두가 차례로 돌아가는 윤회와 다름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하고 하나를 놓는 것은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채움은 비움이고 비움은 채움이라, 비울수록 채울 것이 많아진다. 완벽이란 더이상 채울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이상 비울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것들을 일부 내어 놓아야 한다. 약 1천 년 전, 인간의 욕심에 대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주는 말 하나가 있다. 중국 송나라 시절, '자치통감'을 집필한 사마광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어떤 아이가 장독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목숨의 촌각을 다투고 있을때, 주변 어른들이 사다리 내거라, 밭줄 내거라 요란 법석을 떨었다. 장독의 아이가 숨 넘어갈 지경에 이르자 옆에 있던 사마광은 옆에 있는 돌멩이를 주어들고 장독으로 던저 깨어버렸다. 단지 가격, 물값 등의 책임 소재를 따지며 시간을 지체하던 어른들 사이에 사마광이 던진 장독으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장독을 깨어버리면 아이를 잃을 수 있고, 아이를 구하려면 장독과 물을 버려야 한다. 둘 다 얻고자 하는 욕심에 더 큰 것을 잃어 버리는 어리석음은 1천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자본의 효율과 절감의 셈법으로 승객 300명이 바다에 잠기는 모습을 생중계로 바라 보던 일들이 있다. 매년 3~4천 명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배 사고로 300명이 죽은게 무슨 대수냐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내가 너와 다르고 독립적인 객체라는 착각은 모를 때는 모른 척 할 수 있으나 알고 있을 때는 그러지 못하는게 꼭 나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과도 같다. 학문은 채우는 것이고 도는 비우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것을 알고자 채우면서 또 반댓편으로 비우고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학문과 도의 차이이며 도가 텅 빈 충만에 이르면 채우고 비움이 둘이 아니라, 채우되 비워지고 비우되 채워진다. 많이 안다고 현명한 사람이 아니고 도를 많이 깨우친다고 현자가 아니다. 한 쪽에서는 채우고 한쪽에서는 비우는 일을 하다보면 사람에게서 가만히 있어도 향기가 진동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곳에 사람이 모이며, 사람이 모이는 곳에 기회가 다다른다. 불교와 기독교는 종교보다 철학으로 완전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기 위해 종교의 옷을 입은 가르침들이다. 이 둘 모두가 현자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길 그 이상으로 이르고 있으며 도는 안으로 닦고 덕을 밖으로 드러냄을 이야기한다.

떼어내고 싶거나 도망치고 싶은 사람과 현상도 모두 한 선으로 연결되어 두 끝이 이어져 있으니 결국은 원이 되어 언젠가 다시 돌고 돌기 마련이며, '월암스님'의 말씀과 같이 그림자 싫어 도망치면 그림자가 먼저 도착해 있게 된다. 남을 속이고 나를 속여 그럴듯하게 포장 하는 일은 거짓된 선행을 홍보할 수있지만 눈밭을 걸어가는 사람이 중심치 못하고 방황한 흔적은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어 사라지지 않는 길이 되버리니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말고 남을 속이려 하지말고 정도를 가야한다.

오래된 고전 시들과 공부를 많이한 스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이 에세이는 역시 글자 수 적은 시라고 금방 읽어 넘어갈 수 없는 구절들이 많다. 생각하고 생각하는 이 시 구절과 스님의 말씀들은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모두 음독하여 읽었다. 한자어와 사자성어가 많지만 스님과 고전 선인들의 지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으며, 관련 내용을 배우고 느꼈던 배경에 힘입어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모두가 직선상에 놓여 있는 듯 하지만 시간과 인생이란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듯 하면서도 선을 따라 원을 그리며 돌고 도는 것이 어제의 과오를 반드시 내일 다시 만나게 되어 있고 내일의 이정표를 어제의 흔적을 통해 그릴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스님의 글과 생각을 마음에 새기며 좋은 글과 좋은 생각을 전염받아 다음 나의 흔적을 쫒아오는 이들에게도 내것이 아닌 것 처럼 넘겨주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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