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시스템인 신간센이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개통되었다. 또한 일본에서 아시아 최초로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파키스탄, 필리핀의 GDP의 70%까지 경제 규모를 따라왔고 한국군의 월남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마틴 루터 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맥아더 장군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존 F. 케네디가 사망한 다음 해이면서,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부터 독립되기 전년이기도 하다. 한 해가 지내고 나서는 윈스터 처칠과 이승만 대통령, 슈바이처가 사망했다. 종전 후 11년.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1년이 흘렀다. 다음 년도에 있을 한일 협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한국과 일본 간 외교를 정상화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으로 부터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무상원조 3억 달러, 경제 협력 명목으로 2억달러의 차관을 10년에 걸쳐 받도록 되었다. 금액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당시로써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 GDP가 34억 달러였으니 5억 달러는 적다고 할 수 만은 없다. 이 협정으로 일제가 강점기에 불법 강탈해 갔던 모든 한국 문화재에 대해 일본 소유물로 인정하고 재일교포의 지위와 대우에 대한 권한 또한 일본 측으로 넘어갔다. 또한 이 협정에서 강점기간 동안 배상과 청구권의 문제가 모호하게 정리되지 못하면서 현재의 한일 분쟁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일협정은 자존심을 돈을 받고 팔았던 굴욕외교로 평가하기도 하고 한국을 경제를 재건시키는 기틀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9% 를 넘어서고 있었다. 흔히 박정희 대통령을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분명 그의 공은 충분하게 있다. 하지만 가끔 그를 '신앙시'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은 총 19년에 이른다. 이 기간동안 대한민국이 10%이상 고성장을 하던 해는 총 9번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 19년을 기준으로 하자면 10%고성장을 해오던 시기 또한 7번이다. 1964년도 당시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3.3%로 우리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13.3%의 경제성장률을 넘어섰던 적은 2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당시 경제성장을 이끌던 시기의 총리를 우상화 하지 않는다. 당시 일본 총리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의 올림픽 계최와 더불어 높은 고도성장, 신칸센 철도의 개통 등의 성과를 보여 온 총리다. 일본인들 중 그를 우상화하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쉽게 대통령의 업적을 이야기 할 때, 경제성장률을 이야기 하곤 한다. 평균 10.1% 경제성장률을 이끌던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분명하다.
하지만 산업혁명이란 사회와 경제적 구조와 조건이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며 어느 임계점을 넘었을 때, 경제와 사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선 농업의 기계화가 중요하다. 농업이 기계화 되면 생산량이 폭발한다. 적은 노동력으로 큰 생산력을 얻을 수 있는 구조는 잉여 노동력을 도시로 집중하게 만든다. 저렴해지는 농산물 가격은 인건비를 낮게 하고, 낮아진 인건비는 공업활동을 활발하게 만든다. 사회는 도시화되고 공업이 발전하면서 제조업과 무역업의 확대로 커져나간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이야기 하자면, '새마을운동'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을 통해, '산업혁명'이 일어난 우리 사회와 경제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보조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미 구제불능인 나라를 독재 행정부 수장이 영특한 혜안과 지도력으로 가난에서 구해냈다는 점은 동의하기 힘들다. 또한 먹고 살게 해줬기 때문에 존경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동의하기 힘들다. 20세기 초 국권이 피탈되고 우리나라의 인구는 579만명에서 2,512만명으로 4배 이상이 늘었다. 또한 국내총생산에서 공업의 비중이 8%에서 26%로 상승하고 한국인 소유 공장은 1910년 39개에서 1938년 3963개로 100배 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경제를 위해 기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를 찬양하자는 논리는 국가의 근대화 기틀을 남기고 떠난 일본의 강점기 시기를 정당화하는 일본극우의 논리와 비슷하다. 사람의 공과 과는 분명히 구분해야한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가끔 그를 우상시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곤 한다. 마치 각 집마다 수령 님의 사진을 걸어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이야기하는 북한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은 들어서면 자신들의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 그런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우상화'작업을 하게 된다. 이 책은 1964년의 책이다. 57년이 지난 책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외교와 경제, 사회에 이야기 꺼리를 던지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책이다. 이 또한 소장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은 항상 박정희 대통령께 감사해야한다는 말씀으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가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밷어라'라는 말을 하여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했던 악역에 대해서, 죽은 뒤에 마음껏 난도질당하겠다는 총대매기를 하셨다고 했다. 어쩌면 이 글 또한 배불고 먹고 살만해진 이 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는 우매한 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