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문화적 포용력이란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독후감

by 오인환

해당 내용을 정치적 견해없이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은 북한 난민 수용도 벅차고 국내에도 도움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복지 사각 지역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전혀 문화적 교류가 없던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옳을 일일까. 혹은 옳지 않은 일일까. 지난 2019년 10월, 방탄소년단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해외가수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막연하게 이름을 알고 있지만 사우디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이처럼 서로 문화적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사우디가 한국에 문화적 포용력을 발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BTS의 공연을 위해 이슬람 규정도 완화하였다. 외국인 여성 또한 온몸을 가리는 아바야 복장을 착용해야하는 의무를 폐지 하고 혼인 관계가 아닌 이들도 호텔 투숙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슬람의 종파 중 하나인 '와하브파'는 수니파의 한 분파이며 사우디가 그 근간이기도 하다. 와하비즘이 국가 근본인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대중문화의 지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대중음악과 뉴에이지, 서양 클래식을 종교적으로 터부시 한다. 그들은 음악교사를 양성하지 않고 학교에서는 음악 수업을 하지 않기도 한다.

이슬람에서도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사우디가 이처럼 방탄소년단이라는 한국 가수를 위해 규제 완화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은 나와 하등 상관없는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애국주의가 가슴 속에서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얼마 전부터 이슈가 되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다른 입장을 세우고 있다. 정도의 차이를 따지자면 분명 의견을 주고 받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난민 무조건 불수용'이라는 입장은 조금 과격하다는 생각이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광복까지 한민족의 상당수가 러시아와 구소련으로 이주했다. 사라진 국가 국민의 삶은 비참했다. 1860년 무렵부터 광복직전까지 한민족은 농업이민, 강제동원, 독립운동의 명분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으로 이주 했다. 얼마나 많은 한민족이 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 1882년 연해주에는 현지인인 러시아인 보다 고려인이 20%나 많이 살고 있었다. 이런 고려인은 50만명이나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의 인구가 67만명이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정우성은 2014년 한국인 최초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을 시작으로 난민 보호에 대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2015년에는 친선대사에 임명되었으며 꾸준한 소신발언을 통해 안티와 팬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해당 영역에서 충분한 입지가 있는 '정우성' 배우는 불필요한 발언과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손해가 갈 만한 일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인지도를 활용하여 해당 내용을 홍보하는 중이다. 그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틀린지를 따지기 전에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점점 피하지 못하는 문제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 이상과 종교적 갈등, 팬데믹 현상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국가주의'의 시각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2도가 올라가면 해양 연안에 있는 주거지 중 1000만 가구는 물 속으로 잠긴다고 한다. 지구상 5억이 인구가 아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아마존이 사막이 되거나 초원으로 변해버린다고 한다. 현재 생물종의 33%가 멸망하고 열대지역 농작물이 크게 감소하며 남아프리카와 지중해는 물공급량이 20~30%가 감소한다.

'지리의 힘'이나 '총균쇠'를 보면 인간이란 결코 자연과 환경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역사들도 지구의 기온과 환경의 변화에 크겨 영향을 갖는다. 유럽을 휩쓸던 흑사병이나, 11세기 몽골군이 거대제국을 만들었다는 역사,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들도 모두 환경과 기온에 영향이 컸다. 그렇다면 과연 난민이 꾸준하게 발생하거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세계 문화와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그저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일까. 그리고 이것들은 과연 일시적인 현상들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낳는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 난민의 수는 앞으로 꾸준하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중동과 아프리카와 같은 국가들은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다. 서유럽이나 미국, 동아시아와 같은 선진국들이 가져야 할 책임에 가장 큰 피해는 사실상 아프리카와 중동의 국가의 몫이 됐다. 2018년 가뭄으로 아프칸에서 37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비가 적게 내리기 때문에 산악지대의 눈이 녹아 물공급을 이룰 수 있던 아프칸에서 얼마 전 부터 눈이 쌓이지 않아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의 80%는 가뭄 상태로 구분되고 이중 50%가 '심각한 상태'로 구분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9위의 탄소배출 국가다. 사단법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30년이 되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과연 우리는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혜택은 우리가 취하고 책임을 다른 국가와 민족에게 등떠미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난민 수용에 관해서는 아직도 정치적인 의견이 팽팽하다. 여기에 '난민을 수용해야한다',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논의일 뿐이고, 우리가 수용해야 할 범위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제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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