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영어 원서는 어떻게 읽는가

유학파 아빠의 영어교육#4

by 오인환

"컨트롤러 AP의 LED state를 육안으로 확인하세요."

글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남기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일이다. 오늘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일기도 심지어 읽은 사람인 나를 염두하고 쓰는 글이다. 앞서 말한 글은 그냥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이 읽으면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컨트롤러는 무엇이고 AP가 무엇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글은 와이파이 증폭기 사용 설명서 중 일부라는 배경 지식이 주어지면 접근이 쉬워진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컨트롤러', 'AP'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글을 읽고 와이파이 증폭기가 제대로 작동 되는지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려운 단어를 굳이 외우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 아마 이 글이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영어 단어가 몇 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읽기를 포기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컨트롤러 AP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대략 이 글이 하고자하는 말의 본질의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14살에 통감과 사략, 병서를 즐겨 읽고, 15세에 정문재의 서장에서 본격적인 한학 수업을 했다."

이 글은 백범 김구의 유년시절 소개의 글이다. 이 글을 보며 '정문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문재는 황해남도 장연군 명천리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앞선 문맥에서 정문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비정상 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 원서를 읽을 때 만큼은 모든 단어를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따지고 보자면 우리가 듣고 말하는 다수의 단어는 그 뜻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글을 읽을 때는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된다는 착각을 한다. 작년 여름부터 읽어오고 있던 원서들이 있다. 총균쇠, 사피엔스처럼 꽤 어려운 책들을 원서로 읽고나면 '한국어로 읽는 것도 어려운 책인데, 원서로 읽으셨네요'라고 말씀 하시는 경우가 있다. 해당 책이 결코 쉬운 책은 아니지만 나는 그 책을 100% 이해하고 읽었다고 보기 어렵다. 독서의 본질은 '재미'와 '흥미'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읽었다면 나는 아마 지난 1년 간 원서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것이다. 원서를 읽는 이유는 언어의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원서로 읽은 책들은 종이책도 있지만,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해당책들은 종이 책으로 몇장을 넘겨보다가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듣기도 하고 전자책으로 읽기도 한다. 소리내서 읽는 행위에만 촛점을 맞춰 읽기도 한다. 이해하지 못한 문장에 대해서는 다시 돌아가 되살피는 경우는 없다. 다시 다음 문장에서 앞서 놓친 부분을 보충 설명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않고 직진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원서로 읽는 책들은 원서로 처음 읽는 책들도 있지만, 다수는 이미 국문으로 몇 차례 본 책들이다. 때문에 부족한 어휘력과 영어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하다보면 생각보다 몇 문장, 몇 단어 정도를 놓쳐도 괜찮다. 나의 경우에는 조금 어려운 책들을 선택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원서를 처음 선택할 때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자기계발서는 흔히 '거기서 거기다'라고 평가할 만큼 비슷한 내용과 소재를 사용한다. 또한 어휘수준도 어렵지 않고 줄거리가 없다. 줄거리가 없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총 20파트로 나눠진 글 중 17번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18번째 부터 읽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흔히 재밌는 책을 읽고 싶다며 SF소설이나 전쟁 소설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첫 몇 장을 넘기는 일은 가능해도 책의 흥미를 갖고 마무리까지 읽는 것은 어렵다.


책을 읽다가 영어단어를 찾아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책은 흐름이 중요하다. 대략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략 어느정도 흐름을 알고 단어의 어원을 이해하고 있다면 모르는 단어가 어떤 느낌의 단어인지 감을 잡고 읽을 수 있다. 이는 한국어로도 마찬가지다. 가령, "2회 쌍불로 항소취하간주하여 종결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있다고 치자. 우리는 이 문장에서 "쌍불"과 "항소취하간주"라는 어려운 단어를 만난다. 하지만 문장의 흐름상, '재판간 쌍방이 2회 불참석하여 재판이 종결되는 것 같다.'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모르는 단어가 있다고 해서 모든 단어를 찾아보지 않는다. 글을 읽으며 맥락상 매우 중요한 단어라는 생각이 드는 단어와 계속해서 반복해 나오는 문장과 단어의 경우에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글의 흐름상 이해가 가능하다면 모든 단어를 찾아보고 외우고 할 수고스러움을 하진 않는다. 여기서 가정은 기본 동사와 어휘정도를 알고 있다는 가정이다. 원서를 읽기 위해 필요한 단어의 수준은 중등 1,2,3학년 정도의 단어 수준이면 어느정도 가능하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의 남녀 1만 429명을 대상으로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한국성인 기초 문해능력 수준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성인 전체의 4.5%인 200만 1천명은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의 문제가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가 100명을 만나면 그 중 4~5명의 사람은 숫자던, 영어던, 국어던 사회에서 합의한 '문자'라는 정보 전달 수단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성인 문해 능력은 나이가 많고, 월 소득이 낮으며, 학력이 낮고, 농산어촌에 거주할 수록 낮다고 한다. 그중 학력과 가구소득은 문해능력차가 가장 심하게 난다고 한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어쩐지 소득과 학력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학력과 소득이 높기 때문에 문해력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문해력이 높기 때문에 학력과 소득이 높은 것인지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어렵지 않게 그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단순 영어 실력 뿐만 아니라 문자를 이해하는 능력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고로 영어던 일어던, 국어던 가리지 않고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자. 어쩌면 분명 책만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된 원서를 쉽게 이해하는 날이 늦지 않게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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