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0월 1일 학원업을 시작합니다

by 오인환

서귀포시 남원에서 10월 1일 어학, 논술로 개원 예정이다. '아이 학원을 보낼 돈으로 주식을 사줘라' 자녀 사교육비을 허튼데 사용하느니 자본가를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존 리 대표의 말이다. 여기에 공감하는 바다. 아이가 졸업할 시기에 튼튼한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매달 20~30만원의 학원비를 꾸준하게 내면사 아이가 얻어가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은 국어, 영어, 수학, 역사 등의 과목을 공부한다.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강의를 듣고 학교 시험을 치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바로 '본질'이다. '본질'은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삽자루'를 쥐어주고 땅을 파라고 시켰을 때, 자신이 땅을 파는 행위가 납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납득이 되지 않으면 '열심히'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내가 해외에 취업하여 일하던 시기, 나의 상사가 나에게 어떤 요구를 했던 적이 있다.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라는 지시였다. 나는 되물었다. '뭐 때문에 전화하는 건가요? 전화해서 뭐라고 할까요?' 상사는 답했다. '하라면 그냥 해!', 납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상사는 전화를 받은 상대에게 납기일에 대해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지시한 대로 행동했다. 그러자 상대가 대답을 했다. 그 이야기를 다시 상사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의미없이 상대와 상사의 의사소통 전달자의 역할만 하던 나는 전화가 끝나고 허탈함을 느꼈다.

"내가 왜 전화를 하고 있었는가. 나는 지시한 행동에 충실했지만, 상대가 들은 나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궁금증이나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본질은 중요하다. 하고 있는 행위에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군대에 가면 이유가 명확하지 않고 '까라면 까'식의 주문이 들어 올 때가 있다. 어떤 업무의 과정에 이 일이 필요한지에 대한 납득이 없이 단순 반복을 하는 행위는 '스킬(skill)'을 향상시킬 수 있어도 능력(ablility)를 향상시키지 않는다. '영어, 역사, 사회, 국어, 도덕' 등의 교과과목은 각자 학습목표가 다르고 방향도 다르지만, 모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결국, 독서력이 좋은 사람들은 더 쉽고 빠르게 목표에 도달한다. 수학은 단순 공식 암기 후 대입해 보는 과목이 아니다. 수학이란 추론과 논리를 학습하는 과목이다. A=B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 합리적인 과정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모순없는 증명을 통해 객관적 시선으로 상대를 설득 시키는 학문이다. 가령, "집합 A={1, 2, 3, 4, 5, 6}의 부분집합들 중 원소의 개수가 2개인 부분집합들의 원소들의 총합은?"이라는 질문이 있다고 치자. 이 문제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설하여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모순 없는 해를 구하는 것이 수학이다. 이 문제에 정답이 "그냥 105,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느낌이 그래"는 전혀 수학적이지 않다.

다수의 학생은 본질없이 행위에 집중하는 활동을 반복한다. 본질이 없다는 것은 철학이 없음을 의미한다. 어떤 일을 할 때, 표면적으로 그 일에 대한 기술만 익히는 일은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주변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 중 다수는 하는 행위에 철학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철학의 부재는 목표로 나아가는 큰 걸림돌이 된다. '선생이 아니더라도 선생이 되어라' 내가 믿는 철학 중 하나다. 스승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사회에 퍼트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몹시 중요한 일이다. '강사'나 '선생'이 '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필요하다. 만약 그래야한다면, 무료 봉사면 훨씬 좋겠지만, '일종의 업'으로 활용하여 댓가를 지불 받는 것도 좋다. 댓가를 받는 일은 '책임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몹시 중요하다.

학생들이 시험과 내신을 관리하여 성적을 잘 받는 것 또한 현재 '본질'이 상실 된 경우가 많다. 공부의 본질은 '주어진 학습량'을 성실히 완료했는지에 대한 성취도 테스트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유행이던 시절, 친구들과 PC방을 가면 나는 항상 재미가 없었다. 게임 초반에 가장 먼저지고 나서 친구들의 게임을 기다리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게임을 재미없다 느낀 이유는 그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감'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성취감'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는다. 성공한 단 한 번의 기억은 다음에 맞이 할 수많은 기회에 열쇠가 된다. 단 한번도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한 이와, 어떤 일에서든 성취감을 느꼈던 이가 문제를 접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반드시 공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성취감을 맛보는 일은 몹시 중요하다. 명확히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실수와 잘못을 구분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과 평가하여 결과값이 객관적으로 바로 나오는 것은 학창시절, 시험이 독보적이다. 내가 학원업을 신청하며 가르치고자 하는 과목은 없다. 나는 '독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문해력과 영어 문해력만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교과과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매 주 일정 분량의 독후감이나 일기를 꾸준하게 작성하고 그것에 상업성을 판단한 뒤, 꾸준하게 투고하는 일을 거친다면,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저서'를 갖게 된다. 자신의 저서를 갖는다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존 리는 학원비를 사줄 바에 주식을 사주라고 이야기 했다. 맞는 말이다. 불필요한 사교육비는 어떻게 보면 죄악과 같다. 하지만 독서 습관이 없다면 이런 존리의 이야기 마저 전달 될 수가 없다. 연간 20% 상승하는 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스스로가 연간 그 이상의 성장을 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성실하다면 손실없는 유일한 투자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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