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가. 소설에 따옴표가 없다. 마음 속으로 한 말과 소리를 내어 한 말, 내가 하는 말과 상대가 하는 말이 전혀 구분되지 않고 모두 일렬 정렬되어 있다. 문장의 말미에나 가서 내가 읽은 문장이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말이 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작가의 서술 의도를 명확히 유추할 수는 없으나, 한 문장을 다시 곱씹고 상대의 말인지, 화자의 말인지 되찾는 일을 반복하면서 1인칭 시점의 전개 방식 임에도 상대의 시선으로 들어가 되새김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삶은 타인의 시선을 공감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 1인칭 시점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그들의 생각을 표면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으나 그들을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대중교통을 타면 마치 내 배경에 지나지 않는 타인들의 뒷모습이 무탈하고 무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내 배경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인생들임에도 그들 하나 하나에는 우주만한 고통과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지금껏 우리가 누구가를 위로하는 말들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들이다. 어쩌면 식사 시간에 "잘 먹겠습니다."라는 외침을 해야한다는 어린이식 훈련처럼 단순히 어떤 상황에 의식없이 뱉게 되는 영혼 없는 위로의 훈련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가. 누군가가 나의 고통에 공감해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완전한 공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인간으로부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이들은 종교를 빌어 신께 고통을 위탁하고 고통으로부터 완전한 해방감을 맞이한다. 상대의 말과 내 말이 구분되지 않고 마구자비로 서술되어 있는 친절하지 않는 기법은 사실 타인과 나를 동일 시하는 공감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갖게 만든다. 스쳐 지나가는 고양이나 노인에게까지 감정이 이입되어 진짜 화자가 누구인지 애매해한 소설의 전개에 결국 '화자'가 있어도 주인공이 없는 독특한 소설이 완성됐다. 절정의 고통이 죽음이라는 착각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꼬집기라도 하듯, '절정의 고통'이 죽음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으며 되려, 고통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친구의 부탁을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인지 생각하게 한다.
음악을 듣다보면 노래 가사에 표면적인 이야기 흐름이 있는 노래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했으며, 어떻게 됐다.'는 식의 전개가 흘러 나오는 가사. 하지만 다른 어떤 노래에서는 이야기는 없지만 생각과 감정이 열거 되는 노래도 있다.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가사가 없이 음의 높낮이만으로 사람의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해내는 음악들도 있다. 모두가 같은 소재를 이야기 한다고 하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분명하게 다르다. 다만 해석의 여지를 어디까지 주고 있는지에 따라 음악이 포용 범위가 넓어진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계절을 느끼는 것은 '바발디'의 의도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음악을 듣고 언젠가 떠났던 가족여행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던 추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친절하게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풀어 설명해주는 책이 읽기 편하고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되려 읽기 어렵고 사색할 여지를 주는 책들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좋은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이 책은 아예 가사를 빼어버린 '클래식 음악'처럼 전혀 친절하지 않게 전개한다. 이런 전개 방식으로 각자 소설을 읽는 사람들마다 수천 수만 가지의 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타인은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철학적인 질문을 소설 분위기로 꾸준하게 던지며 심오하지만 그래도 납득 가능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함께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만 누구나 반드시 겪을 최후의 죽음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하다. 언제든 함께 해줄 것 같은 위로 뒤에도 결국은 모두와 떨어져 혼자 오롯하게 경험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시간. 과연 우리는 함께하고 있을까. 우연히 발견한 소설의 제목과 시간이 일치, 다시 화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과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인의 언쟁. 우리의 삶은 일관적인 듯 하면서 모순적이고, 모순적인 듯 하면서, 일관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