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어른이 되어 있겠지 독후감
'하율이네', '다율이네', '새댁네', '우리동네'와 같이 '-네'란 '사람'이나 '어떤 부류'를 뜻한다. 여기에 '나그네'는 '나간 사람'을 이르는 말로 여행은 나그네가 사는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일이다. 원래 여행은 '관광상품', '휴양'의 이름과는 다르게 고되고 힘든 여정이다. 과거시험을 보거나 도망이나 피난 등의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 일이 많지 않았다. 지금의 관광산업이 일종의 여가활동이 된 이유는 아마 '교통'과 '숙박시설'의 편리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자신의 살고 있던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일에는 분명히 피치 못할 사정이나 일로 인핸 '목적'이 분명했다. 그러다 산업이 확장되며 여행산업이 여가 활동이 됨에 따라, 여행은 목적보다 과정이 즐거운 여가가 되었다.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고 나서면서 떠나는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본래 새로운 정착지다. 오늘날 떠나는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새로운 정착지가 아니라 자신의 집이다. 출발지가 곧 목적지임을 알면서 이곳과 저곳을 떠돌아다니다 다시 제자리로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에 항상 촛점이 맞춰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행이라는 '과정'은 '쉼'을 준다. 본래로 돌아갈 길이 확실한 이들에게 여행은 '정해진 어제와 오늘로' 벗어나 불확실한 미래를 즐기는 과정이다. 마치 떨어질 것 같은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가 주는 공포감과 불안감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는 것처럼, 여행이 주는 불확실성은 본래 인간이 갖고 있던 본능에 대한 향수 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일정한 루틴을 갖고 완성 단계로 나아갈 때, 사람들은 '안전'이라는 보호장치에 대한 믿음과 동시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다. 규칙적인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쉬고,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고, 쉬는 삶에서 우리는 내일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 받으면서 동시에 기대감과 흥분감도 해소 받는다. 이것을 채울 수 있는 현대의 여가가 여행이다. 우리는 '책' 속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책은 간접 경험이다. 살아 있는 경험은 여행이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과소비'와 '여가생활'에 대한 '변명'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붓다나 예수는 책이 아닌 여정으로 삶을 공부했고 그것의 일부만이 담아진 것이 책이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다르다. 이는 실제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민족과 인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감사함이나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지거나 못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고난을 바라보는 시선, 이런 것은 쉽게 얻기 힘들다. 물론 '유럽', '미국'에서 휴양을 갔다 온 '관광'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책의 저자는 '남미', '동남아'를 돌며 살아 있는 체험을 한다. 현실에 불만이 많고 감사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들은 '인도여행'을 가라고 한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과 가난을 겪고나면, 대한민국에서의 삶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인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찌됐건 그녀는 인도를 경험 함을써, 언제나 사용가능한 비교대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고난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비교대상 역'을 한다는 것이다. 항상 맛있는 음식만 먹었던 사람은 '라면'을 먹고도 맛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하지만 위생 상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다면 '라면'의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
고난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이런 '비교대상'을 내 마음속에 차곡하게 쌓아두는 일이다. 어떤 일에도 1cm의 기준선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5m나 10m나 벅차오를만큼 높은 숫자다. 하지만 기준선이 7m인 사람에게는 5m는 부족하고 10m는 만족되는 숫자가 된다. 우리는 매일과 같이 성장하는 사회문화와 경제 속에 살고 있다. 끓어 오르는 개구리처럼 우리의 기준선은 무의식적으로 높아져만 간다. 의도적인 고생을 수차례 겪으며 이 기준을 낮추는 일은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게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나이가 들고 나서 하는 고생은 체력이 받춰주지 못한다. 이제 갓 30이 된 저자는 이미 충분한 고난의 경험치를 쌓아두었다. 나 또한 '호주', '뉴질랜드', '싱가폴', '일본', '베트남', '태국' 등 외국을 경험했다. 하지만 저자와 같이 이렇다 할 여행의 추억은 많지 않다. 아마 '일'이나 '공부' 등의 목적을 갖고 떠났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가끔은 목적없는 일에 기어이 내 시간을 내어 놓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