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먼저 태어났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인 사람들이 있다. 단지 먼저 경험해 봤다는 이유만으로 남들보다 낫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사람의 어른됨이란 '나이'와 상관없다. 허륜은 무관인 아버지 허곤에 이어 무관으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실존 인물로 조선 중기 용천 고을의 현감을 지냈다. 젊은 시절에는 오랑캐의 목술 숱하게 베던 공을 쌓은 무인이다. 이런 대단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다르게 그의 아들은 정실 부인이 아닌 첩의 소생으로써 중인 신분으로 살아간다. 그는 29세에 과거시험의 잡과에 합격한다. 하지만 광해 7년 그는 조선 최고의 품계 정1품 보국숭록대부로 추증됐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아는 것이 많고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른이 저절로 된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어른에 대한 인식' 때문에 나이만 많은 '꼰대'가 생겼다. 어줍잖은 조언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은 요새 젊은 이들에게 갑갑한 일이다. '내가 해보니...'로 시작하는 문장에는 '너도 같은 실패를 할까봐, 걱정되서...'라는 위선이 담겨져 있다. 세상은 운이 7할을 담당하고 있다. 마치 먼저 통과한 '러시안룰렛 게임'의 당사자가 이기는 노하우를 설파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없다.
단순히 운이 나쁜 이가 하는 조언에 대해 귀담아 들을 이유가 없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어른들이 하는 많은 이야기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말 귀중하고 소중한 말도 많다. 그들은 '꼰대'가 아니라 '어른'이다. 단지 먼저 태어나서 섣부른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품을 줄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주 중요한 경험이 하나 있다. 항상 엄지 발가락이 구멍이 나 있던 양말 때문에 학교를 갈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입구에서 부터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실수로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확인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놀림이나 당할까, 항상 엄지발가락 부분을 길게 늘여 두 번째 발가락 사이로 꼬집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그냥 구멍난 양말을 보여주며 말했다. "웃기지? 구멍났네" 하루종일 조마조마해야 했던 구멍난 양말이 나의 단순한 행동 하나 때문에 웃고 넘어가는 유쾌한 일화가 되었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계란후라이가 된다는 말처럼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부숴지는 상황의 변화를 겪을 수록 사람은 어른이 되고 차분해진다. 다양한 상황에 유쾌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깨닫는 일은 그저 먼저 상황을 겪어보았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스스럼없이 알아서 해쳐나갈 것 같던 어른들의 나이가 되어보니, 아직도 나는 아이같다. 아직도 미숙한 부분이 많고 나보다 낫은 나이많은 이들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를 험담하는 자리에서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유쾌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여유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권위를 내려놓고 때로는 커다란 실수에도 눈감아 줄 수 있는 관대함은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라 사색하고 경험했던 순간의 숫자로 결정되는 듯하다. 어린 시절 수첩에는 내가 스스로에게 지켜야 할 몇 가지에 대해 적어두고 다녔다. 다시 생각해보면 유치한 이야기들 뿐이지만, 거기에는 지금봐도 멋진 말들이 많다. 가령, 매번 가보지 않았던 길로 아무 이유없이 돌아가보자는 이야기나, 때론 아무 이유없이 누군가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내보자는 내용까지, 따지고보자면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를 당시의 어린 나는 기록해두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화'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나이 어린 사람들보다 더 낫다라고 착각하는 바보 같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류는 단 한번도 진화를 역행한 적이 없다. 자연선택설에 따라 우리는 더욱 우월한 이들을 만들어 냈고 과거의 누군가보다 더 우월한 누군가가 살아남았다.
자연의 법칙에서 그들보다 더 먼저 죽음에 가까워져 있는 열등한 '나'라는 존재가 감히 더 생명력을 뿜어낼 '우등한 존재'에게 조언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항상 진보해 왔다. 불과 50년 전인 1971년까지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스위스에는 여성참전권이 없었다. 1996년까지 일본에는 '우생보호법'이 존재 했으며 이 뜻은 '우월한 생명체를 보호하는 법'이라는 뜻으로 16,500명이 본인의 동의 없이 국가로 부터 강제 불임을 당했다. 그 중에는 9살 소녀도 있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국가로부터 강제 불임을 당한 이유가 '청각장애'이나 '정신분열', '정신지체'처럼 도저히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같은 인류는 꾸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보해 가면서 더 낫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먼저 태어났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좀 더 낫은 방향으로 진보해가고 있다는 가정에서 생겨나는 대우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보자면 사실상 더 어른스러운 것은 '나'보다 '후대' 쪽인지도 모른다. 격식을 차리고 남들이 해주는 대우에 고개를 뻣뻣하게 구는 사람일수록 '나이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노약자 배려'가 아니면 생존경쟁에서 이길 자신없는 나약한 이들이 문화와 남들의 배려 속에 숨어 권리를 누린다. 사실상 전쟁 수행능력이 가장 뛰어난 나이는 만 18세~ 30세까지다. 생존 능력이 극에 달하고 전투 능력이 뛰어난 나이라는 이야기다. 그 이전과 이후의 나이에는 보호 받아야 할 대상이다. 어느 영화의 유명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안다.' 내가 얻고 있는 것이 진정 납득 가능한 권리인지, 혹은 호의인지에 대해 잘 파악하고 경기장에서는 실력과 능력으로 당당하게 어른으로 인정받아보자. 책은 독일인의 글처럼 마냥 쉽게 설명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어른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