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유... 그리고 사물들_사물들

by 오인환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눈에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가장 완벽하게 모사하는 것이 곧 정답이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것을 가장 완벽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3차원의 어떤 것을 2차원의 평면 위에 모사하는 작업에 커다란 의미는 있지 않았다. 철학이나 사유보다는 가장 완벽한 모방만이 답이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고민했다. 과연 3차원의 세상에 있는 것을 2차원으로 옮겨 담는다면 본질의 어떤 것이 누락되고 있지는 않는가. 미술은 그렇게 발전했다. 빛에 의해 가려지는 부분과 각도에 따라 숨겨지는 부분까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에 최대한 가까운 것을 담고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예술은 점차 고차원적이게 변해갔다. 글도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숙제로 작성했던 방학 일기장에는 내가 그날 무엇을 했는지가 적혀져 있다. 차원 높은 인간의 하루를 어떤 행동을 했는지로 기록하는 것이 고작 일기에 담는 모든 것이었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는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보다 중요했던 시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3차원의 것을 2차원에 옮겨 담거나 24시간을 한 장 남짓으로 옮겨 담을 때, 꽤 많은 정보가 누락된다. 이 중에서 가장 낮은 차원의 것만 옮겨 담는 것이 본질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에는 '사유할 명분'이 있다. 사유해야하는 이유나 구실이 분명하게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것과 나만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함께 사용하던 물건이 나를 당시로 되돌리곤 한다. 21세기 현대과학은 아직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못했지만 언제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물건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사물들을 가진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 조차 여러 '사물'에 흔적을 묻히며 살아왔으니, 현대인들에게 사물이란 더 많은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대체적으로 오래된 물건을 좋아한다. 그것이 담고 있는 철학을 좋아한다. 새것이 갖고 있는 순수함보다는 오래된 것이 갖고 있는 철학에 조금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순수함이란 앞으로 철학이 남을 수 있는 빈자리가 많은 상태임으로 이것에 대한 기대감과 오래된 것의 철학은 분명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것에는 '정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체성은 '흔적'을 통해 발생한다. 인간도 정체성과 자아는 '흔적'에서 출발한다.

흔적은 그래서 몹시 중요하다. 이 사람이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가졌는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그 것은 그 사람의 미래를 대략 가늠해 보게 한다. 사물에는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한 사물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보며 끝없이 사유하는 이 책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나 또한 이런 비슷한 훈련을 재미삼아 하곤 한다. 나는 보통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새로운 것을 접하기보다 이미 봤던 영화나 들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경향이 있다. 하나를 무한대로 반복해 보는 이런 습관은 자칫 누군가에게 '지겹다.'라는 감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다른 시선과 방향을 찾는 놀이를 한다. 가령 영화를 본다고 할 때는 감독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배우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며, 주인공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또한 악당의 시선이나 작은 역할의 조연의 시선에서 보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가'라는 질문을 하나 던지면 시선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해석이 발생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곡가의 시선, 작사가의 시선, 가수의 시선, 가사의 이야기나 리듬을 듣기도 한다. '가수는 이 구절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며 녹음을 했을까' 이런 사유의 놀이는 쓸때없지만 참 오래된 나의 생각 놀이법이다.

항상 잔뜩 쌓여 있는 정보의 책과 1차원의 행동을 담아둔 이야기 책을 보다가 사유할 수 있는 책을 오랫만에 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고민하고 생각해본다. 앞서 말한 미술처럼 본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 뒤로 보여지지 않게 숨겨져 있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찌그러진 만년필이 있다. 가족여행을 가던 도중 안 주머니에 넣어둔 만년필이 실수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며 뚜껑 윗부분이 찌그러진 것이다. 이 만년필은 몰블랑의 제품으로 공항에서 구매했던 것이다. 반짝 거리는 새 제품을 아껴 쓰느라 항상 조심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이 바닥에 떨어지고 난 뒤에는 완전한 나의 흔적이 묻어버렸다. 깨끗하게 새 것 처럼 쓰겠다는 마음은 어디에도 있지 않고 완전히 편하게 이것을 사용하게 됐다. 사실 원래 사물의 본질은 사용에 있다. 그리고 그것과 나의 관계는 흔적에 있다. 나는 새로운 수첩이나 노트를 받으면 언제나 첫번째 페이지에 더러운 글씨로 지저분하게 메모하곤 했다. 가급적 새것에서 멀어질수록 편해졌고 내 것임이 확실해졌다. 깨끗하게 사용하고자 했던 노트나 수첩은 항상 '북!'하고 찢어 '새거다움'을 유지하고자 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십 수 년 뒤에 앞 장이 수장이나 찢어진 노트를 볼때면 내가 찢었던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몹시 궁금할 때가 있다.

사물은 내가 잊어버릴 기억을 흔적이라는 방식으로 저장하는 메모리 같은 것이다. 앞만 달려가던 세상에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했던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여러 기억의 흔적을 묻혀두고 나의 선택을 받길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분명 재밌는 사유 놀이다. 오랫만에 조용한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은 글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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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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