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책과 인문학이 AI와 함께 할 때...
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빠르게 100m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술은 이미 수 백 년 전에 완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르게 100m 목적지에 도착하는 훈련을 이어간다. 이미 42.195km를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기술 또한 오래 전에 완성됐으나, 우리는 기계에 감동받지 않는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꺾었지만, 실제로 다시 한 번 스타의 자리를 확인하고 많은 광고와 협찬을 받아 상품성을 인정받은 쪽은 알파고가 아니라 이세돌 9단이다. 기계는 항상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듯 하지만 한 번도 인간을 위협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은 언제나 시대에 따라 기계를 능숙하게 이용하는 능력을 길러냈으며 이를 확실하게 잘 다뤄 더 많은 부와 편리를 이뤄냈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시장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무차별적이지 않는다. 어린시절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보통 비디오와 만화책을 함께 대여해 주곤 했는데, 지금 스마트폰으로 영화와 만화책을 모두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자 비디오 대여점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 되었다. 어떻게 보자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쇄소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는 일을 하던 문선공은 현재 컴퓨터와 인쇄술의 발전으로 사라졌다. 이 또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았던 것 처럼 보인다. 대체로 반드시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져가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직업 이동성을 갖고 있다. 가령, 식품회사에서 경리업무를 하던 사람이 유통회사의 인사담당자 될 수 있으며, 텔레마케터가 치킨집 사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도 충분히 존재해왔다. 넷플릭스는 원래 DVD를 대여해 주던 대여점이 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들은 망거나 사라지지 않고 더 큰 번영을 이뤘다.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 것이다. 간혹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미래에 사라질 직업 순위'와 같은 기사를 보곤 한다.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그 직종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가게 된다는 불안감은 옳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 시장과 사회는 그것을 충분한 시간을 주며 받아들인다. 즉, 점차 수익성이 없어지거나 문화적인 도태를 알리는 여러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넷플릭스 서비스가 하루 아침에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 지구상의 모든 비디오 대여점주들의 생존에 위협을 준 것이 아니다. 비디오 대여점은 점차 수익성이 떨어지고 시장은 새로운 기술에 점차 노출되며 공급자들은 여러 차례 더 큰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를 얻기도 한다.
AI는 앞으로 인류를 지배할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 잘못된 선택을 통해 우리 아이와 내 직업이 사라지는 경험은 아마 갖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동네에 하나도 없던 치킨집의 가능성을 보고 선점을 했더라도 그 외 많은 경쟁자들이 치킨집을 하거나 치킨 사업의 수익성이 없어졌다면 빠르게 다른 직종으로의 연구를 통해 발빠른 대처를 해야한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우리에게만 있던 현상이 아니다. 삼성은 쌀농사를 짓던 회사에서 정미소, 유통 등 시대와 상황에 맞춰 나가며 발전해 왔고 현대나 애플 또한 그렇게 진화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사실상 1분 사이에도 꾸준하게 움직이는 주가 그래프를 보자면 우리의 미래는 어느쪽으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꾸준하게 갖고 있다. 여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특별한 직업을 선택하여 평생 편안하게 살겠다는 생각은 '공무원'이나 '농사'와 같이 일부 직종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택시를 운전한다고 앞으로 10년과 20년의 미래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자만이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렌버핏 또한 당장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실패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십 수년의 미래를 확신하는 이들 대비 없이 자신의 인생을 불투명한 미래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가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할까.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관리'를 말하고 싶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한다. 핸리 포드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는 개발자들이 5시간 50분에 한 대를 생산하던 일을 여러 사람들이 단순 업무를 나눠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1시간 33분으로 단축했다. 이런 생산성 확장은 사실상 자동차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전문가는 관리자가 되고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근로 시간을 단축하고 제품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누구나 탈 수 없는 비싼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를 쉽고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필수품으로 이 됐다. 이처럼 사회의 변화는 무차별적인 폭력성을 갖는다기보다 수요와 공급의 라인을 왔다갔다하며 적정가격과 시장에서의 상품성에 의해 흥망이 정해진다. 대체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예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면 유럽은 앞으로 24년 뒤인 2035년에는 내연기관인 신차 판매가 중지된다. 사회가 내연기관에서 전기 혹은 수소차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에 따라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이 모두 죽는다고 볼 수 없다. 이 중 일부는 더 커다란 시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흐름을 읽는 시선은 보통 독서로 길러진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업가들의 갖는 습관이 전통적으로 독서였던 이유도 이런 맥락과 관련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석유 고갈'에 대해 꾸준하게 들어왔다. 이런 기사는 수 년 내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대부분의 매체는 대중에게 이런 불안감을 이용한다. 대중 매체가 대중으로부터 선택 받기 위해 이용하는 최고의 감정은 바로 '불안감'이다. 우리는 언제 맹수에게 공격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밤잠 설치고 경계를 서곤 했던 DNA를 갖고 있다. 우리가 다시 매체에 눈을 때지 못하게 하여 광고 수익을 얻는 단순한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독서의 대단히 중요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할 수록 인문학의 중요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미래는 분명 불투명 했지만, 그것은 과거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이건 과거던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했으며, 인문학과 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승리했다는 것은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