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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16. 2021

[인문] 수학은 왜 필요한가_문명과 수학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알아도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다. 수학은 필요가 하나도 없다.', '수학은 실생활과 전혀 상관없는 공상같은 학문이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만 주는 과목이다.', '사람의 생각과 실생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수학은 어떤 학문이기에 대한민국, 전 국민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한 피해자 임에도 정부는 바꾸지 못하고 아직도 새로운 피해자를 양성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공교육의 실태'라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있다. '십 수 년을 공부하고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영어', '쓸 데 없는 수학', '창작자도 모르는 숨은 의미 찾는 국어'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모든 국민과 사회인에게 요구하는 기초적인 지식과 교육을 국가는 책임지고 국민은 의무로 갖는다. 이를 위해 공교육은 '보편적 교육'을 할 수 밖에 없다. 한 명의 교사가 수 십 명의 학생을 양성하고 평가해야하는 공교육의 특수성에서 '말하지 못하는 영어'는 당연하다. 우리가 공교육에서 공부하는 '영어'는 미국의 아무개와 친분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의 수학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수학능력이란, 받을 수(受)를 사용하여 대학에서 학문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인류가 쌓아 온 대부분의 지식과 정보는 모두 문자화되어 있다. 새로울 것도 없이, 한글로 만들어진 정보보다는 영문'으로 쌓여 있는 정보의 수와 질이 높다. 



 국내에서 '시험'과 '평가'를 하고 '공문'을 내리고 '논문'을 기재하는 등의 권위 있는 '내용'들은 모두 '문자화'되어 있다. '국어'는 '소리정보'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다수에게 전파된다. 소리 정보는 그 속도와 강세, 어감, 감정 등이 모두 전달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문자정보들은 사용자에 의해 결정된다. 즉, 아무리 긴 내용도 숙련된 어떤이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디오북은 틀림없이 어떤 부분에 도움이 되지만, 2배속으로 올려도 읽는 속도보다 느리다. 그 이상으로 올리면 소리가 뭉게져 이해하기 어렵다. 잠시 딴청 피운 사이에 전달자는 배려도 없이 일방통행으로 직진해 버린다. 내 이해력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듯 말이다. 이런 글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그 속의 내용에 따라, '국어', '영어', '사회', '역사', '과학', '윤리' 등으로 쪼개진다. 하지만 사실은 모두 '문해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결국 모두 '문해력'을 키우지 않고서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들이다. 그렇다면 수학은 어떤가. 중학교 시절부터 우리가 맞이하는 수학 시험지의 마지막 문제는 항상 숫자보다 글자가 많았다. 매년 수능 수리영역의 최초 4문제는 매우 명료하게 숫자와 기호로만 출제된다. 다만 가장 마지막의 문제는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이 문자로 되어 있으며 특이하게도 이것의 배점이 가장 높다.



 수학은 무엇을 위한 학문이며,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수학은 '논리'의 학문이다. '논리'란 어떤 사고나 추리를 이끌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수가 납득 가능하도록 '설득하고 증명'하는 학문이다. 


'2a-14=2'이라는 식이 있다고 해보자.여기서 a는 무엇일까. 한 나이 많은 노인이 이 질문에 나타난다.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a는 1이로세"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왜요?"라고 묻는다. 노인은 대답한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내가 1이라면 1인 것이지!, 어린 것이 뭘 안다고 따지고 들어!"라고 대뜸 혼을 낸다. 반면에, 한 꼬마가 나온다. 그리고 말 한다. 


"2a-14=2"인 이유는요. 양변에 서로 같은 값을 더하거나 곱하거나 나누어도 등식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에요."


"양변에 모두 14를 더해주고, 2를 나눠 주면 등식은 바뀌지 않아요."


"2a-14+14=2+14"


"2a=16"


"2a÷2=16÷2"


"a=8"


이라서 그래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노인과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갖고 있는 꼬마 중에서 다수는 누구의 이야기를 믿고 따를 것인가. 수학은 '논리'의 학문이고 '증명'을 통해 상대를 설득해 내는 과목이다. 즉, 아래와 같은 논리를 갖고 있는 누군가의 말이라면 그 사람의 나이가 이제 막 태어난 2살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믿을 것 같다. 반박할 수 없는 논리의 체계를 위에서 아래의 정렬 방식으로 깔끔하게 증명해 내는 것은 '힘'을 나타낸다. 대통령이 옳다고 하는 일이라도 '논리'의 체계를 통해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 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내일은 비가 올 예정입니다."


기상캐스터가 말한다. "왜죠?" 라고 물었을 때, 기상캐스터가 "그냥 느낌이 그럴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말을 믿을 것인가. 다수를 설득하고 반박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촘촘한 논리는 다수에게 '믿음'과 '신뢰'를 형성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국가는 '미국'이다. 수학은 국력이다. "수학이 그토록 쓸모가 없고, 덧셈 뺄셈이나 할 줄 알면 되지."의 교육을 아이에게 하고 있다면 아이는 논리없는 주장을 통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은 누군가는 그것이 오류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눈에 보여지기 전까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논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지구의 둘레를 줄자를 갖고 재어보지 않았는데 우리는 지구의 둘레를 알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간단한 '호의 길이'를 구하는 공식만으로 지구가 4만km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여주는 것이다. 직접 지구의 둘레를 줄자를 통해 재어도 괜찮다. 다만 더 넓은 관념을 다수에게 설득하기에 이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책상에 앉아서 지구의 둘레 뿐만 아니라, 태양과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다수가 반박하지 못하는 논리를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상당수의 대중은 '논리'에서 그 '사람'으로 신뢰와 믿음의 대상을 확대한다. '누구 누구가 말했으니 맞을 것이다.' 처럼 말이다. 다수에게 믿음과 신뢰를 받는 다는 것은 엄청난 권력, 부를 부여 받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힘'이 존재한다. 꼭 행동하는 것이 모자르고 바보 같던 사람도, 결국 알고보니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를 다시 보게 만든다.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을 통해 신뢰와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는 합리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간혹 수학을 '해답 구하는 과목'이라고 착각하여 정답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학의 본질은 '설득'과 '증명'이다. 수학은 '풀이'가 '해답'만큼이나 중요하다. 수학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은 다양한 수학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읽어야 한다. 고로,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과목은 결국 '글'이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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