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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25. 2021

[생각] 꾸준함이 정답인 이유_전봇대를 만지고 와라

 내 삶의 가치관이 바뀐 말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전봇대를 만지고 온다.'는 말이다. 얼핏 듣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이 말은 지금도 내가 곱씹는 말이다. 한 친구가 있었다.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했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친구는 운동을 시작한지 꽤 오래 지났는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음을 자부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이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라는 말을 나는 너무 표면적으로만 이해한 것이다. 친구는 매일 같은 시간이 되면 반드시 동네 운동장으로 가서 할당량 만큼의 운동을 채우고 돌아왔다.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의 말에 대단함을 느꼈으나, 이 말이 내 가치관을 바꾸진 못했다. 내 가치관이 바뀐 이야기는 그 다음에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태풍이 심하게 불던 날, 그는 우산을 쓰고 현관을 나섰다. 운동복을 차려 입고 한 손에는 장우산을 들었지만, 우비는 입었을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눈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그 시간.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고 항상 돌던 운동장의 전봇대를 손바닥으로 만지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얼핏 '미련'하거나, '융통성'없거나,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삶이 가치관이 바뀌었다. 내가 하는 '열심히'가 '나의 기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을 마음먹고 꾸준히 하다가 어느덧 생각해보면 기억나지 않은 어떤 순간부터 그것을 안하고 있을 때가 있다. '열심히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열심히'가 진짜 '열심히'였는지도 모르겠다. 운동을 하면 극단적으로 3시간, 4시간을 하고, 바쁘면 잠시 접어 두었다가, 다시 시간을 내어 열심히 하던 내 삶의 방식은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성실함은 불 타오르는 열정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는 굉장히 오랜 기간,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지만 영어 못 한다.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어'는 떠올려 보자면 '열심히'했던 기억은 많지 않다. 생각해보건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꾸준하게 반복된 일이 성공의 비결이었으리라. 지금도 굉장히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어보다 영어 교육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더 빠른 시간에 한국어에 능숙해지고 있다.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한갓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로부터 음력 4월이 되면 젊은 여자들은 밖으로 나가 봉선화를 빻고 손톱에 물을 들이곤 했다. 물들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붉은 봉선화 꽃잎을 따다가 손톱 위에 올려 놓는 것이다. 마치 하얀 천에 색소를 입히는 것처럼 오랜기간 봉선화 잎에 노출된 손톱은 그 봉선화 꽃잎을 닮게 된다. 핵심은 '노출'이다. 


 우리는 누구도 반 친구의 얼굴을 외우기 위해 노트필기를 하거나, 어머니의 말투를 닮기 위해 듣기 평가 시험지를 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높은 확률로 노출가 잦은 것과 닮아지게 됐다. 영어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출 빈도를 높이는 것이다. 글을 잘 읽기 위해선 꾸준히 글을 읽는 것이고, 건강한 신체를 원한다면 꾸준하게 운동하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할 필요는 없다. 열심히는 자신을 소진하여 지치게 만들고 소진 후에는 그 결과에 따라 의욕을 잃게 만든다. 그저 단순히 그것에 자주 노출되야 한다. 일정 시간을 꾸준하게 노출하고나면 그것은 우리의 몸은 봉선화물처럼 스며든다. 더 많은 봉선화를 빻아 손톱 위에 올리더라도 잠시 올렸다가, 떼기를 반복한다면 물은 들지 않는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핵심은 어떤 날은 극단적으로 빨갛고, 다시 어떤 날은 노출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꾸준하게 그것에 노출되는 것이다. 진화는 거기서 이루어진다. 지금도 나는 남들이 듣기에 이해하지 못할 주문을 새로운 습관을 형성할 때마다 외우곤 한다. '그냥 전봇대라도 만지고 오자'. 크리스마스다. 누군가는 잘 지켜왔던 어떤 가치관을 '오늘 하루' 잠시 내려 놓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생일', '새해' 등. 우리가 축복이라고 여기는 수 많은 특별한 날들은 사실, 우리를 변화지 못하게 발목잡는 '저주의 날'이 될 수도 있다. 오늘 하루만 건너려고 했다면, 그저 지금 먼저 시행하고 남은 여유의 시간을 축복으로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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