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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27. 2021

[과학] 생명의 탄생을 과연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있는가

무질서가 만든 질서 서평

척박한 지구에 원시세포가 처음 탄생했다. 이는 움직이거나 기어다니지도 못했다. 그저 삼투 펌프에 의해 겨우 '대사' 정도만 하며 '생명'으로 겨우 분류되는 어떤 존재였을 뿐이다. 겔의 형태로 흐르다가 고이는 일이 이들의 존재의 전부였다. 축축한 화산의 어느 물 웅덩이에서 시작한 이런 작은 대사의 시작은 생명이 되었다. 우리가 추측건대 이들이 시작한 유전자 변이의 독특한 특성은 지금의 우리의 속에도 담겨져 있다.생명이라는 고귀한 탄생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명이란 아주 고차원적인 물리적, 화학적 반응들이 우연찮게 이 땅 위에 생겨난 뒤에 만들어졌다. 작가인 '스튜어트 A. 카우프만'은 세계적인 복잡계 이론생물학자다. 그가 생며의 탄생에 대해 이처럼 도발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에 도전한다. 대략 40억 년 전, 아주 먼 곤드와나 대륙 서해안에 원시 생명이 탄생했다. 흐릿한 햇빛으로 겨우 따뜻해진 지구의 축축한 물웅덩이에는 밤이오고 낮이오기를 반복했다. 이들은 말랐다가 젖었다가를 반복하며 대사하고 변이했다. 의지없이 수동적으로 다른 물질을 흡수했다가 뱉어내기를 반복 했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먹거나 뱉거나 배출한다고 부르기 조금 애매한 형태의 반복이었다. 그들의 손자와 손자. 그리고 그들의 손자는 조금씩 번영해가며 지구를 덮어 갔다. 그들은 떠더니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고 젖다가 마르면서 결합하고 분열했다. 어떤 세포들은 우연하게 바위에 붙어 정착형 섭식을 하고, 다른 어떤 세포는 겨우 꾸물대다가 다른 원시생물의 성분을 흡입했다.


 모두가 비슷하게 시작한 원시세포는 수동적 출렁거림과 마름과 젖음, 부딪침과 정착함, 흡수와 배출 등의 행위를 반복했다. 4,000,000,000년 전에 생명은 조금씩 성격이 다른 어떤 것들로 나눠졌다. 고작 생물로 보기도 어려울 것 같은 벼룩이나 바위 위에 이끼나 지금 고성능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인간이나 그 뿌리의 뿌리, 그리고 그 뿌리의 뿌리를 살펴보면 아주 기가막힌 우연에 의해 겨우 갈래가 나눠진 운좋은 세포와 그렇지 못한 세포일 뿐이다. 이런 기가막힌 우연과 물리학으로 말하기 모호한 부딪침과 마름, 젖음을 누가 감히 물리학과 화학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만물은 수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 피타고라스 조차 이를 '수'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고작 나눠 떨어지지 않는 '무리수'의 발견으로 위기를 맞이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논리처럼 우리의 물리와 화학은 과연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과연 타당한 과학의 범주에 들어가는가. 종은 점차 다양해지면서 생태적 지위를 나눴다. 먹히는 세포와 먹는 세포가 생기고 조금더 고차원적인 대사를 하는 세포와 단순한 대사를 하는 세포로 나눠졌다. 각기의 세포는 최초 국가가 산업화 이전에 각기 따로 발전하는 모종의 어떤 산업들이 '산업혁명'이 되자, 갑작스럽게 하나의 유기체 모양을 형성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 처럼 성장했다. 자동차 산업이 정유산업을 발전시키고, 정유산업이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며 상호 상생관계로 성장해가듯, 도로, 시설, 공장, 소비 등의 복잡한 유기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의 종의 폭발을 야기 했다.


 세계는 숫자와 숫자를 더하고 빼는 '수'가 아니며, 이를 바탕으로 한 물리와 화학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과 생물의 시작은 '서사'며 '이야기'이고 '우연과 필연'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일어나는 기적과도 같다. 얼핏, 물리학 전체를 부정하는 듯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생명의 첫 출현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무질서가 만든 질서'란 결국 우리가 정의 내린 '수와 물리, 화학'이라는 질서 속에 생명과 우주를 담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어차기 우리가 진리로 여기던 '고전물리'가 '양자역학'을 만나면서 전혀 들어먹히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맞이 한 것 처럼, 우리가 지금껏 이해하려던 물리적, 화학적인 생물의 정의는 모순을 피하지 못한다.그는 그렇게 세계적 천재들에게 수여되는 맥아더 펠로십, 하버트 사이먼 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논리는 '다윈'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어떤 '원인'에 의해 일어났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논리적 모순에 의해 '가능하게 함'에 의해 일어났다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심장은 혈액을 몸 구석 구석으로 펌프질 하지만, 그것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진화했는지, 혈액을 펌프질 하기 위해 진화했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정의 내리는 과정이 너무 '인간의 사고'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됐다는 결과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한 가운데 어떻게 바뀌어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드디어 비교적 최근의 과학인 '양자역학'을 만난다. 필연적인 공식에 의해 생겨났다기보다 '일종의 확률적'으로 존재했고 오로지 '가능성'에 의해 일어났다. 생물의 진화를 기존 과학으로 설명하기에 그 '확률'이 너무나 터무늬 없다. 결과를 알고서 생각하기에 그저 '그 기가 막힌 우연들의 지독한 시간을 만나 생겼다'로 정의 할 수 밖에 없다. 정확히 원인과 결과에 의한 고전 물리학을 생명공학에서 분리하고 '양자역학적 생명공학'을 이야기 한다. 생명의 진화는 말 그대로 알 수 없다.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해 앞으로의 생물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명은 '양자역학'의 원리로 어떤 확률적 가능성에 의해 존재하고 사라졌다. 어떤 물리법칙도 생물권의 창발을 함의하지 않는다. 기가막히게 들어 맞던 고전 물리가 현대에와서 삐걱거리면서 정답으로 정의되던 생명의 탄생에도 여러가지 시각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과학이 만나는 최대의 난제인 '알 수 없다'가 최대의 정답값이 되어버리는 논리를 지은이는 한다. 책은 가볍고 얇고 짧다. 하지만 책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읽기는 쉽지 않다. 다만 생명과 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누군가라면 호기심을 갖고 읽어볼만 하다. 이 책의 부제는 'A World Beyond Physics'로 물리학을 넘는 세계를 뜻한다. 생명에 물리학을 배제 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자칫 유사과학이나 사이비로 전락할 수 있지만, 그런 접근을 통해 현대 과학을 접하고 있다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들어 올 여지가, 지동설이 우리에게 들어 올 여지마저도 있기 어려웠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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