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맥주를 내가 즐겨했던 이유는 맥주가 주는 '휴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냉장고 문을 열어 거품이 흘러나오는 맥주캔에 입을 맞추면 피로가 모두 가시는 듯했다. 진짜 술에 맛도 모르고, 단지 그 '휴식'을 취한다는 제3의 눈의 이미지만 갖고 싶었다. 일과를 마치고 맥주가 목젖을 타고 꼴딱하고 내려가면 이제 나는 외출을 하지 못할 공식적인 핑계를 완성하곤 했다.
이제 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없고, 약속을 잡을 수도 없으며, 그 어떤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술김'이라는 방어벽에 숨을 수 있었다.
혼자 궁상맞아도 그럴듯했고, 일찍 잠에 들어도 그럴 수 있었으며, 늦게 잠에 들어도 괜찮았다. 슬프면 슬프구나, 좋으면 좋았구나, 나의 자아를 술에 숨기는 좋은 방패 백이었던 맥주였다. 술을 마시면 깊은 잠을 자는 듯하고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한다. 슬슬 변질된 '휴식'이라는 이미지에서 '수면제' 혹은 '꿈을 꾸기 위한 쓴 약' 정도로 의미 없는 맥주를 넘기는 일이 반복됐다.
오늘로 그런 맥주를 '당. 분. 간' 끊으려 한다.(솔직히 완전히 끊겠다고 다짐을 해도 안 될걸 알기에 줄이겠다.)
거의 인생에서 내가 위로받던 거의 유일했던 나의 아이템을 끊음으로써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놓는 샘이 됐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생이라는 것을 지속할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놓는 일들이 많아진다.
사람 간의 이별이나 살았던 공간, 시간, 물건, 기억 등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돌이켜 보면 내가 스스로 놓아버렸던 것들은 나에게서 소중한 것들이었다. 다만 그것을 놓을 때마다 의식하지 못하고 놓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 중, 내가 좋아하는 것 중 내가 의식을 하고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들은 나에게 정말 좋은 것들일까?
짝사랑을 포기하는 일은 슬프지만 필연적이어야 하고 빨라야 한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만큼, 상대도 그만큼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나만 좋아하기 때문에 놓지 못하면서,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는다면, 더욱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맥주를 나는 너무 좋아하지만, 맥주는 나에게 그만큼의 보답을 해주는 녀석은 아니다. 되려 나를 망가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원함과 '휴식'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나를 꾀어 나를 조금씩 망가 트리는 것과 같다.
핸드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문뜩 지난주에 자랑스럽게 찍어둔 캔맥주 사진이 발견됐다. 물론 이미 모두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면, 하나둘씩 정리해 가자.
나 혼자 좋아하는 것들은, 그것들이 가끔 나를 몹시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여겨왔다. 그것들에 의해 스스로 망가지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 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위하는 것들만 남겨가자. 남기고 남기고 정리하고 정리하다 보면 진짜들만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스케줄링을 하고 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날 표시간 스케줄을 완성하고 지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완료]로 분류되어 달력상에 계속 보이게 되는데, 그것을 완성하여 지워야만 결국 없어진다. 오늘 이루지 못한 스케줄은 마우스로 드래그하여 내일로 끌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에 해야 할 일을 다음 주로 미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스케줄을 짜 놓으면 크나 큰 변수는 많이 없다. 또한 어떤 날에 일이 몰려들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나를 보면 물을 때가 있다.
'서평 하는 책은 전부 읽고 있는 건지?'
'여행은 정말 매번 갔다 오는 건지?'
'벌리는 일은 정말 실체가 있는 건지?'
등등 말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소개와 들어가는 말과 맺는말을 포함하여 표지에 있는 글자까지 읽는다. 책을 써 본 입장에서 책에 있는 모든 글자가 작가의 정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물론 매번 간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꼭 가려고 노력한다. 여행을 가는 일은 시간 내어 '러닝머신'을 뛰는 행위보다 효과적인 운동이다. 나의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며, 내가 쓰는 글에 영감이기도 하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좋은 동기이기도 하다.
확실한 건 남들보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분명한 건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 때 해야지!' 하는 일들을 나는 그냥 쉬는 날 할 뿐이다. TV를 보지 않는 것도 거의 10년이 넘은 것 같다. 살다 보면 나를 너무 옥죌 필요는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은 다만 강박일 뿐이다. 편하지 못한 삶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될 나의 책에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인생이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일일 뿐이다. 의미는 만들기 나름이다. 둥근 링 안에 공을 넣는 행위는 때에 따라서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 행위에 '농구'라는 이름을 붙이면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삶의 대부분은 그렇다. 모든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다만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될 뿐이고,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안 될 뿐이다.
스케줄을 짜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무의미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했다. 고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며 많은 이들을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습관인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다만 그 행위를 소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