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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12. 2022

[계발]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은 요구하지마라

수학 1등급은 이렇게 공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사람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나도 그렇다. 당장 내일 모레가 시험인데 공부는 커녕 핸드폰을 만지적 거리는 모습을 본다면, 부모로써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를 것이다. 나의 아이는 아직 6살이기에 직접 경험해 본 것은 아니다. 생각없이 사는 것 처럼 보이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먼저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입장에서 "고생길이 훤~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앞날이 뻔하게 보인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다. '공부가 제일 쉽다. 추운 날에는 히터를 켜놓고 앉아서 간식 먹으면서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면 되고, 더운 날은 에어콘 켜놓고 앉아서 펜대나 돌리면 된다. 정말 그럴까? '조금 더 살아보니 공부가 제일 쉽더라.'라고 생각하고 '먼저 다 경험을 해봤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동네 서점으로 들어가 학생 아이들이 푸는 수학 문제집을 사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권만 풀어보라. 스스로가 어린 친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것이다. 반드시 미적분과 같은 고등 수학일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수학에 손을 놓고 있었다면, 중학교 2학년, 3학년의 문제집도 나쁘지 않다. 이것은 수학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수준의 교과서는 과학, 역사, 수학 할 것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내용들이 적혀 있을 것이 뻔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지나오고 나니 그 시절이 편하고 좋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처음 부딪치는 난관에는 같은 크기의 고통을 갖게 된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인생의 쓴맛', '가장의 책임'이라고 더 큰 것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도 '가장의 무게'와 같은 크기다. 그들의 고민이 하찮고 자신이 하는 고민만이 무게감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멘델의 유전법칙'과 '독립의 법칙'을 정의해 보라. 머리가 멍하게 된다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멘델의 유전법칙'과 '독립의 법칙'은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배우는 학습내용이다. 그들보다 먼저 경험해봤다면서 과연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아졌는가. 혹여 이 법칙을 알았다고 치면 다시 묻는다. '다수의 주권국가가 공동의 이익달성을 위해 국제법상의 조약에 의해 결합하고, 외교 능력 등의 일정범위의 국가 기능을 공동기구를 통하여 행사하는 국가형태를 이르는 용어는 무엇일까?' 혹시 이 문제에 정답을 'UN'이라고 생각했다면 오답이다. 정답은 '국가연합(Conferderation)'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주요 과목이라고 부르는 '국영수'가 아닌 '도덕'문제다. 단연코 아이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어른은 많지 않다. 학생들을 이런류의 과목을 무려 7~10개를 배운다. 다시 주어진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어른들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10개의 다른 과목을 주체적으로 시간관리하며 점수를 관리할 수 있을까.



 아직 앳된 표정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위와 같은 문제를 만나고 지금의 당신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어른들의 무거운(?) 문제'들도 사실은 보기에 따라서 별거 아니다. 푸는 방식은 학창시절과 비슷하다. '본질'을 알고 '문제해결능력'을 키운 후, 반복하고 시간관리와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혼자서 골똘하게 고민하고 푼다. 분명 이런 문제는 풀었는데 비슷한 유형이 다른 문제는 틀린다. 아무리 열심히해도 진보되고 있다는 갑갑함에 좌절하게 된다. 옆에서는 치고 나가고 집에서는 '닥달'한다. '사방'에 퇴로가 모두 막혀 있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그들에게만 있지 않다. 학교가 끝나고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들이 있다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업무가 퇴근하고도 이어져 있지 않다면, 적어도 아이들은 우리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고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보다 낫다. 게으른 아이를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이'라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아이는 해결하라고 할 수 있나?



 당신이 학창시절 공부를 꽤나 했고 아이가 당신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사람마다 열정이 타오르는 시기는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를 넘어선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학교에 있다가 2시간을 학원 수업을 들고 수행평가를 하고나면 10시가 넘는다. 예전처럼 앉아서 문제만 풀어서는 '내신관리'가 어렵다. '학교'에서는 공부는 커녕 '정신 못차릴 정도의 수행평가 과제를 요구한다. 왜 선생님들은 수행평가 과제를 시험기간에 제출하라고 하는가. 또한 선생님들은 자신의 할 일을 미뤄 본 적은 없는가. 이 과제는 무려 내신 30~50%를 차지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다수는 지금의 교육제도를 경험해보지 않고 다그친다. 도대체 언제 하라는 말인가. 혹, 당신이 친구와 혹은 지인과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고 '현실에 불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학생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차원이 얼마나 다른 것일까. 수학 1등급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내가 하지 못할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아이의 앞날이 걱정된다면, 잔소리가 늘어나야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누구의 삶을 보고 자라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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