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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12. 2022

[생각] 뉴스를 보지 않는 까닭

인플루언서 글쓰기 정지중(D-23)

 '뉴스'를 보지 않는다. 관련한 내용은 몇 번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시사상식'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대답한다. '시사상식'은 왜 중요한가?' 역사상식은? 과학상식은? 수학상식은? 음악상식은? 시사상식을 아는 것이 교양인의 첫걸음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이런 사회적 인식은 언론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언론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업이 아니다. '주식회사'다. 조선일보를 예로들자면 2019년 매출액은 2991억원, 여업이익 301억원이다. 방상훈 대표이사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겨례 또한 그렇다. 주식배분을 통해 지분이 나눠져 있는 주식회사다. 주식회사는 어디까지나 회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 경쟁미디어가 증가하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언론사는 광고주 의존도가 높아졌다. 실제로 4대 재벌광고의 3분의 1이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광고를 한다. 8개의 신문 중에 4대 재벌광고 비중이 가장 높았던 신문은 2014년 기준 25.2%로 한계례신문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신문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간 신문 매출액이 63.7%가 광고 수입이다. 구독료는 15.7%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언론의 주요 고객은 '대중'이 아니라, '기업'이다. 매체의 다양성으로 기업은 '광고'를 실을 선택지가 늘어났다. 주요 매출인 광고 소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언론기업은 '공정성'에 큰 위협을 받는다. 뉴스와 신문은 정해진 지면과 방송 시간이 존재한다. 또한 데드라인이 있다. 발제와 취재, 마감을 반복하며 쫒기듯 작성된 기사는 신뢰가 떨어진다.

 한낫 블로거도 협찬과 지원금에 대한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다. 나 또한 글을 쓸 때, 협찬과 지원을 받는다. 없는 내용을 있다고 하여 작성 할 수는 없고 '솔직한 후기'를 써달라고 하지만, '악평'을 쓰기는 쉽지 않다. 일개 블로거와 인플루언서도 이런 유혹이 쉽지 않은데, 이것을 주요 매출로 담당하는 언론 회사가 '언론윤리'로 얼마나 이것을 절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언론은 남들에 취재하지 않은 새로운 사건을 빠르게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슈성을 띈 기사(특종)을 만들어 내야 하는 압박을 갖고 있다. 이에 어떤 사안에 대해 깊은 자문과 토론이 있기가 구조적으로 힘들고 현장 취재기자보다 데스크의 의견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여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쉽고 해결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나의 경우는 '경제면'이 아니면 되도록 뉴스를 보지 않으려 한다. 특히 사회면과 정치면, 연예면은 거의 보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면 기사에는 '살인, 강도, 절도, 성폭력, 마약' 등의 이슈가 나온다. 자극적인 소재가 많다. 정치면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정치에 관심이 없냐!'라고 물을 수 있다. 사실상 내가 정치면을 보지 않는 이유는 정치가 '정치'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 후보자 '가족'의 이야기와 '의혹'이라는 '타겟성' 꼬리를 달고 시작하는 망상의 글들이 대한민국 정치(국가를 다스리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기사들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의혹이 있다면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이 있다면 해명을 하는 것이 옳다. 다만, 정도가 지나쳐 정치의 본질이 알 수 없어졌다. 이런 기사를 내가 왜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깨닫지 못하겠다.

 연예인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사는 이슈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 싱가포르에 수출했을 때, 한 공중파 기자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연락했던 적이 있다. 기자 님은 '자료를 취합해서 일단 보내주세요. 아시잖아요? 좋은 기사보다는 안 좋은 기사가 더 좋은 기사라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웃고 넘어갔던 짧은 대화 내용이었는데 지금 곱씹으니, 아이러니하다. '안 좋은 기사가 좋은 기사...'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던 '통계'와 '그래프'도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두 가지 기사의 헤드라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 '충격! 한국언론자유지수 아프리카 가나보다 낮아...'

 B) '특종! 한국 언론자유지수 아시아에서 당당한 1위...'

 C) '단독! 한국 언론자유지수 두 계단이나 상승!'

A와 B, C는 모두 사실이다. 한국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41위로 두 계단 상승했으며 아시아 1위이자, 가나보다 낮은 편이다. 헤드라인에 '충격','특종', '단독' 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킨다. 인간의 신념과 실제의 사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왜곡된 것을 맞다고 가정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맞이한다. 우리는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를 판단하기 전에, 자신이 사실로 믿고 싶은 정보들을 취합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정답을 정해 놓고 보기에,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모습은 모두 옳고, 반대편의 어떤 것에는 모두 '악함'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뉴스기사가 모두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신문을 믿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인데, 어린시절 봤던 하나의 기사가 있다. "기독교를 믿는 국가일수록 1인당 GDP가 높다."라는 내용과 '저소득일수록 소득대비 식비 사용 비중이 높다'라는 기사다. 이런 기사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국가, 신생아 수 극도로 높아!'와 같이 허무맹랑한 소리다. 참고로 2018년 중국에서는 한해 1천 500만명이 태어났으니, 중국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신생아 수가 극도로 높은 건 사실이다. 중요한 이슈와 정보는 굳이 찾아 듣지 않아도 알게 된다. 신문은 대중을 상대하기 때문에 언제나 중심을 지켜야 하지만, 당연히 이에 따른 유혹에 취약하고 왜곡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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