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이치고 있어라. 난 재밌게 놀고 있을께'
만 18살, 남들보다 빠른 나이에 군입대를 했다. 20살 성인이 되고 첫 생일을 군부대에서 맞이 했다. 모두가 한결 같이 안 좋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앉아, 난생 처음 가보는 곳에서 이유없이 욕 먹었다. 그러나 그러려니 했다. 군대를 가기로 결정됐을 때, 동갑내기 '여자아이'는 말했다. "뺑이치고 있어라, 난 재밌게 놀고 있을께". 약이 올랐지만, '남자가 군대를 가는 것'은 당연했다. 별 생각은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같은 나이의 남학생, 여학생 모두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억울하다'라는 생각보다는 '안 가는게 부럽다'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듣기 좋게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입대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건 분명 아니였다. 되려 '놀림거리'였다. 영장이 나오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정신 좀 차리고 와라!' 혹은 '철이나 좀 들고 나와라'. 이것은 인삿다.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국군 아저씨께...' 하고 초등학교 시절 썼던 손편지는 '수염이 덮수룩하게 난 인자한 아재 일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군대를 가보니, 국군아저씨들은 만 18세에서 20세의 젊다못해, 어리디 어린 얼굴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썼던 위문편지이 나보다 고작 6살 많은 형들이 받은 셈이다. 그 국군아저씨들은 지금쯤 나와 나이를 함께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 내가 생각했던 '국군 아저씨'는 철책선을 손으로 만지며 북쪽을 바라보고 매서운 눈빛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그런 모습의 군인이었다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만 18세에 국가에 의해 강제 징집된 내가 군대에서 했던 일들은 건빵이나 우유와 같은 부식을 전달하고, 주말에는 간부 님들이 즐기실 테니스장을 정리하며, 풀 뽑고, 눈치우고, 소각장에서 소각할 쓰레기를 정리하는 잡무들이었다. 우유팩이 든 자루 속에 들어가 콩콩 뛰며 쓰레기 정리하는 모습과 리어카에 종이박스를 실어다가 소각장으로 버리는 행위들은 군복을 입었지만 잡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삼엄한 경계근무를 서고 힘든 훈련을 이겨내며 2년을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제대로 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징병되는 대다수의 군인들은 그저 '대기'하며 '생활'하는 수준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에는, 먼저 들어온 아이가 나중에 들어온 아이에게 거들먹거리며 '상관'놀이 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세탁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병장이 아니면 양말과 속옷을 손빨래를 해야하고, 훈련소 어딘가에선 밥먹고 난 뒤, 식판을 초코파이 껍질에 빨랫비누를 문질러 씻었다. 기껏해봐야 먼저 끌려왔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 없는 이들에게 무족건 복종하는 시스템. 군생활하며 10번도 해보지 않는 사격훈련, 수류탄이라고는 훈련소에서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이상한 군대였다. 훈련소에서 처음 지급해주는 보급품은 전역까지 입어야 하고 군생활하면서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부모님께 돈을 타 써야 하는 구조'였다. 그깟 휴가 몇 일을 부대에서는 인심쓰듯 주기도 하다가 자르기도 한다. 군대는 그냥 가둬놓고 정치인들 행정 '숫자' 채우기 그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다 같이 비효율적인 20대를 보낸다. 진짜 제대로 된 몸을 만들고 사격술을 배우고 뛰어난 군인으로 양성이 되어 나가지도 않는다.
국방의 의무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지기는 한다. 최소한 '면제', '신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행운처럼 쥐어 줄 것이 아니라, 세금의 형태로라도 거둬들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당연한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황당할 만큼 어이가 없기는 하다. 사실 시간이 꽤 지나고보니, 군대를 갔다 온 것이 억울하거나 그러진 않다. 나름 재밌고 좋은 기억이다. '진명여고'에서 어떤 학생이 어떤 글을 썼길래, 이처럼 사람들이 반응하는걸까. 이슈성이 강한 글을 쓰지 않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무성의한 편지가 나왔다. 별감정 없던 군생활이었는데, 어쩐지 이제 군에 들어간 후배들에게 미안해진다. 사실 군대 생활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앞서서 좋지 못한 기억에 대해 기술하긴 했지만, 분명 좋은 면도 있다. 누구나 막내로 입대하여 왕고로 전역한다. 아무리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부대내 '최고참'이 되고, 아무리 '안하무인'처럼 살던 이도 '막내'로의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알아서 움직이는 눈치가 생기고 사실, 남자들끼리 가장 빨리 친해지는 말인 '어느 부대 다녀 오셨어요?'도 생긴다. 전역 후에는 죽을 때까지 만나보지 못했을 인연들과 인연이 되고 '조롱'만큼이나, 군전역자라는 암묵적인 프리미엄이 어느정도도 존재한다. 솔직히 군대를 다녀 온 남자에게 통할 것 같은 '상식선'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있다고 느껴진다.
국민의 4대 의무로 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 교육의 의무, 납세의 의무가 있다고 한다. 국민의 4대 의무에 '국방의 의무'가 있다며 '여자는 국민이 아닌가!'를 외치는 부류도 있는 듯 하다. 이는 조금 극단적인 생각인 것 같기는 하다. 국민의 4대 의무는 강제성을 가진 의무가 아니다. 국민의 4대의무가 법적 강제성을 갖고 있다면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이들은 모두 구속되야 하는 것일까. 2010년, 헌법 제39조 1항의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에 '여성은 포함하지 않는다'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났다.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가하는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한 남성이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이에 재판소는 합헌으로 결정했다. 다만 최근에는 저출산으로 인해, 남성징병률이 너무 높아져 간다는 것은 문제다. 이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의 징병률보다 훨씬 더 높다. '평등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국방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기라고 여겨진다. 그나저나, 어째서 이처럼 사회 갈등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