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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19. 2022

[일상] 차라리 아이의 잔에 술을 따르고

, 담배를 물린다_스마트폰은 죄악이다.


학생들이 보기에 '천인공노'할 만한 주장이 있다. '스마트폰 규제'다. 어제 저녁 '하율'에게 태블릿PC를 통해서 유튜브를 틀어주고 이른 저녁 깜빡 잠에 들었다. 눈을 선잠에 눈을 떠보니 새벽 1시, 6살 난 하율이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기겁하고 태블릿PC를 껐다. 사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나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하면서도 대부분 그대로 노출시킨다. 이유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강요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학창시절 친구의 자취방에는 TV가 있었다. 친구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꽤 있었지만, 나날이 성적이 떨어졌다. 그는 예전부터 '독'하기로 유명하여, 흔히 말하는 '하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는 성격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취방에 있는 TV가 문제였다. 항상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어 정신없이 시간을 TV 앞에서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친구는 어느날 부모님께 자취방에 있는 TV를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네가 보지 않으면 되지! 의지력의 문제일 뿐이야!, 그렇게 의지가 약해서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래!'라고 친구의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그 뒤로도 몇 번을 TV를 치워달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의지력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 뒤, 친구는 공구함에서 장도리를 꺼내어 TV브라운관을 부숴 버렸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유혹'을 산재해 놓고 그것을 참아내는 능력을 '의지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지력은 그 '유혹 거리로부터 멀어지는 법' 또한 '의지력'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는 있지만 스마트폰은 '철저한 규제'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은 '술'이나 '담배'보다 더 유해하다. 인터넷은 세계 거의 모든 것과 연결해준다. 이는 반 친구들끼리 소통의 창구가 되는 '좋은면'도 있지만, '나쁜면'과의 비중을 볼 때, 그것을 상쇄하고도 차고 넘친다. google에 간단한 검색만으로 아이들이 노출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자살, ,도박, 성, 마약, 폭탄, 범죄 등' 과연, 술과 담배보다 이롭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들 중에는 소수로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페이지의 유머글을 찾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유머로 시작했지만, 스마트폰을 시작하는 나이를 중1로만 여겨도 6년안에 성인이 되어, 왜곡된 역사, 정치 인식을 갖고 투표권을 갖는다. 1990년 대 말 부터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률은 2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1983년도에는 대한민국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3,000명 대 수준이었다. 꾸준히 비슷한 수준이던 자살률이 1990년대 말 부터 갑작스럽게 튀오르기 시작한다. 물론 IMF기간과 겹치기는 하지만 이 후로도 꾸준하게 증가하더니 2003년에는 1만명이 넘고 현재는 한 해 13,000명이 자살한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부모와의 갈등', '친구문제'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부모와 소통의 단절을 가속화시키고 친구와 갈등 문제도 비약시킨다. 그렇다면 요즘은 학교 과제도 전자기기가 없으면 안되는 시기가 왔다. QR코드를 인증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면서 스마트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것은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적당한 통제를 통해 이를 제어할 있다고 믿지만, 성인들이 보는 '오징어게임'과 같은 드라마를 보지 않은 학생이 없고, 흔히 넷플릭스에서 상영하는 대부분의 영상들이 15세 이용가임에도 모두 시청한다. 15세면 중학교 3학년이다. 흔히 그냥 웃고 즐기는 JTBC '아는형님'이나 '런닝맨'도 중3 이하에서는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익명'의 탈을 쓰고 주야장천을 넷 상에서 활동한다. 흔히 이슈가 되는 '극좌', '극우' 페이지는 검색어를 기입하는 정도로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일정 댓글에 쉽게 선동되고 세뇌된다. 학생들이 카카오톡을 통해서 친구와 소통하는 시간에 비해 '범죄자'와 소통하는 시간은 훨씬 늘어난다. 자유로운 스마트폰 활용에 대한 허가는 사실상, 아이의 식사시간에 반주 한잔 따라주는 것보다 유해하다. 그렇다고 아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유혹거리를 산재해 두고 유혹을 참으라는 것은 '인내심'이나 '의지력'이 아니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편이 맞다. 어째서 고승들은 산으로 향하는가.

저녁이 되면 유치원에서 끝나고 집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아빠가 '시계'를 확인하던, '카카오톡 메신저'를 확인하던, 급한 업무상 '문자'를 확인하던 상관하지 않고 수 분에 한 번 씩,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손에서 떼지 않는 모습을 바라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의 눈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선', '그 모습'이 굉장히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노트북과 태블릿PC, 스마트폰을 집에 갖고 들어오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문뜩든다. 어쩐지 집에 앞서 말한 것들과의 소통창구를 열어 놓는 느낌이다. 아무리 '유아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고 하더라도, 아편전쟁에서 최초 아편이 청나라로 들어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시작의 끝은 중독으로 마무리된다. 일단, 내가 먼저 전자기기와 멀어짐으로 아이에게 그에 맞는 환경을 비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다행히 집에 있는 스마트폰형 전자책이 있다.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른이 내가 먼저 이를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인도 하지 못하는 일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학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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