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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03. 2022

[생각] 육아가 힘든 이유

인플루언서 글쓰기 정지중(D-1)

 육아가 힘든 이유는 상대가 점차 말을 알아듣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마당에 있는 돌에게 1m를 움직라고 요구를 한다고 치자. 다음날 꿈쩍도 하지 않는 돌을 보고 화내는 사람은 없다. 속상하지도 않는다. 냉장고에 있는 양파에게 방청소를 한 번 도와주지도 않느냐고 서운해 하지도 않는다. 5살 아이가 우연하게 방정리를 해놨다. 그렇기 기특할 수가 없다. 스스로 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무의식적으로 할 법한 일들에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함'이 생겼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기대감은 충족되지 못하면 스트레스로 변한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라는 말은 인간이 되먹지 못했기 때문이아니라, 오히려 믿음직하기 때문이다. 이는 육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보다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장사를 하는 쪽은 '블랙 컨슈머'에게 더욱 신경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에게는 '기대'가 없다. '실망'도 없다. 그저 그런가한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되려 그가 내 마음을 알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의 누군가는 분명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상대도 충분히 그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겨난다. 다만 이는 충족하기 힘들다.

 인간의 기본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은 '아들러'에 따르면 '관계'로 부터 시작한다. 즉,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근본적인 고통과 고민은 대부분 사라진다. 번뇌를 피하기 위해, 가장 먼저 모든 관계를 정리하는 '스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들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동양에서는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상대가 믿음직하다는 이유 때문에 화가 난다면, 고통과 고민의 근본 원인은 상대에게 있는가. 자신에게 있는가. 1살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고, 점차 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가기 시작한다. 그만큼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도 커져나간다. 쉽게 '기대감'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은 사실, '기대감'보다 '욕심'인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내 맘처럼 움직여주고, 내맘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지극한 '이기심'과 '욕망' 덩어리다. 세상 자기맘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내맘처럼 되지 않음'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더욱 가까운 사람일 수록, 더욱 믿을 만 한 사람일수록 기대감을 갖고, 실망감을 갖기 때문이다.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자신을 자신과 같이 알아주는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깨우쳐야 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자신 뿐이고,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도 자신 뿐이다. 더 깊게 생각해보자면, 자신 조차 자신을 잘 모르고, 자신조차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바란다. 정작 매해마다 새해다짐을 하고도 다음 년도에 새로운 다짐을 하는 자신을 두고 상대에게 '금연하기', '다이어트하기', '성적 향상하기', '술 끊기' 등을 강요한다. 자신이 강하게 마음먹어도 바꾸기 쉽지 않은게 자신이다. 눈을 감고 자신이 가장하기 어려워 할 것 같은 것을 한 번 생각해보자. '아랍어 유창해지기', '왼손잡이로 모든 생활 바꾸기' 등. 그것을 오늘부터 차근 차근 도전해보자.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상대가 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우습게 생각하거나, 사랑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가 아니다. 의지력이 약하거나 가볍게 말을 흘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외부적으로 존재하거나 내부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쉽게 바꿀 수 없다.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상대에 속상해 하고 있다면, 내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상대가 아니라, 속상해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육아로 이야기했지만, 육아가 아니다. 모든 관계는 그렇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하나 하나 상대를 변화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바꾸어봐야 한다. 담배피는 상대를 금연 시키는 것과 담배를 피우는 상대를 보고도 불편해 하지않는 마음먹기,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바꾸기 쉬운가. 만약 전자를 바꾸기 쉽다고 생각하고 덤비고 있다면, 스스로의 변화는 못하면서 상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꼴이다. 혹 후자가 바꾸기 쉽다고 생각하면, 그 편을 선택하는 편이 맞다. 소리를 밖으로 버럭 지르고 부글 부글 끓는 일보다, 눈을 감고 호흡을 다듬으며 조용히 정진하는 뱡항이 내부와 외부적으로 더 행복한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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