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Feb 17. 2022

[생각] 본질의 중요성#9_맟춤법과 마찮가지로 뛰어쓰기

 '맟춤법과 뛰어쓰기를 자주 틀린다. 이에 지적도 많이 당한다. 마찮가지로 주어와 술어도 어색하다. 불필요하게 수동태 문장이 자주 사용되어지면서 글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끊어질 듯 말듯 하며 계속 잇어주는 접속사 덕분에 도대체가 한 문장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문장을 읽고 있는 것인지 이해도 안 돼고 부사와 형용사를 너무너무 많이 많이 쓰느라 정작 말하고자 하는 핵심 전달이 안됀다. 술어를 깔끔하기 정리하지 못하여 글의 마무리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문장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종종 들게 될 때가 있게 쓴다고 생각이 되어진다고 느끼는 바이다.'

 위 글을 읽으며 아마 불편했다면 정상이다. 문법과 띄어쓰기 맞춤법이 모두 엉망인 글을 읽는 것은 고역이다. 다만, "마춤뻡 틀렸써요"와 같이 일부러 틀리게 쓰지 않는 이상, 모르고 틀리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괜찮다고 본다. 해외에서 유학할 때, '니 맘대로 해'라는 말을 생각하지 못해 'It's your mind.'라고 했었다. 이에 현지 친구는 몇 시간을 함께 하다가, 나중에 'It's up to you.'라고 수정해줬다. 그 뒤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심지어 내가 유학 중, 교수 님들도 틀린 문법으로 강의를 하셨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지, '문법'이나 '맞춤법'이 아니다. 원어민들과 영어로 소통하다보면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틀려도 좋으니까 자신있게 말해' 그렇다. 틀려도 좋으니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만 그렇지 않다. 글도 그렇다. 틀려도 좋으니, 자신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은 자신을 노출시킨다. 즉, 장문을 쓰다보면, 맞춤법에 틀리기도 하고 띄어쓰기가 틀리기도 한다. 모르고 틀리는 부분도 있지만 퇴고하다보면 명확히 보이는 것도 있다. 쓰다보면 지식과 상식이 소진돼 나의 무지가 여실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머릿속을 끄집어내 전시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치욕스러 울 수도 있다.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괜히 빈곳을 열어 보이는 느낌이다.

 글의 본질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좋은 글은 쉽게 이해되게 쓰는 글이다. 그러려면 최대한 맞춤법과 띄어쓰기 정도는 배려하고 주술관계 정리도 잘하는 게 좋다. 다만, 본질이 흐려지는 것은 결코 반대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얘기가 있다. 자신의 단점이 드러날까봐 아예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최악이다. 차라리 틀리면서 쓰는 편이 낫다. 한국인들은 어학연수 중 특징이 명확하다. 가만히 자신의 입을 닫고, 남들의 입을 지켜본다. 그리고 틀리는 순간, 오류를 지적한다. '문법적으로 틀렸어!'. '융통성'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시험본다. 다만, 중등, 고등, 대학 시험에는 '맞춤법'보다, '의도 파악'의 유형이 가장 많다. 즉, 구구단도 중요하지만, 그깟 '구구단을 외자' 좀 버벅 거리고 틀린다고 '수학실력이 형편없다'라고 할 수는 없다. 구구단을 잘 외운다고 수학을 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수학은 '논리'의 학문이고, 문학은 '이해'가 핵심이다. 글의 본질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와 같은 도구에 있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을 파악하는데 있다. 즉, 상대의 문제다. 다시 말하자면,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너무 과도하지 않는다면 적당히 넘어가도 좋다. 물론 신경은 쓰인다. '무엇이 낳냐. 아이를 낫다'처럼 지적하지 않고 베길 수 없는 상황은 나도 많이 겪는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일필휘지로 완벽한 글을 만들어내는 것은 헤밍웨이도 하지 못했다. 헤밍웨이는 최소 80번 퇴고를 하였고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을 남겼다. 장담컨데, 헤밍웨이의 초고에는 맞춤법과 문법 오류가 많았을 것이다.

 글을 쓰라고 권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쓸게 없어요' 혹은 '더 완전한 타이밍에 제대로 쓸래요' 쓸게 없다는 경우는 그렇다치더라도, 완전한 타이밍에 제대로 쓰겠다는 마음은 나 또한 가진 적 있다.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들어 내겠다 욕심은 환상이지만 누구나 갖는다. 다만 이것은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됐을 때, 출발하겠다는 것과 같다. 완전한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타이밍은 대게 시작 전이 아니라, 진행 도중 만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무지한 내가 보기에 추사체는 도통 일관성이 없다. 어떤 글씨는 '못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도대체 한 사람의 글씨인지 헷갈릴정도다. 즉, 변화하고 발전한다.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그림은 추상적이고 단조롭다. 다만 그의 어린 시절 그림은 사실적이고 무겁다. 모두가 불완전하게 시작하고 진행 중 완전함을 찾는다. 모차르트는 희대의 천재지만 실제 600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다작가다. 피카소 또한 2만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아인슈타인은 240편의 논문을 남겼고 에디슨은 1039개의 발명 특허를 남겼다. 그들은 천재적인 역작만 만들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다작을 하고 그중 일부를 다수에게 인정 받았다. 한국의 대표 영화감독인 봉준호 감독은 천재적이라고 알려졌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품을 수 없이 만들었다. 송강호, 이병헌, 황정민 배우 님들 또한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공하는 듯 하지만, 쉼없이, 오디오북 녹음, 연극, 집필활동을 한다. 모두 다작이다.  쉼 없이 다작한다.

 

 '맞춤법 틀렸어요.'라고 하면 '아! 제가 틀렸네요'하고 고치면 된다. '글에서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네요'. '문법 틀렸어요.'의 지적은 가볍게 할 수 있으나, 글의 본질보다 문법과 맞춤법, 띄어쓰기에만 집착하는 것은 잘못됐다. 중1 영어 시험에는 '문장은 대문자로 시작하고 마침표로 끝난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 이유로 마침표가 적혀 있지 않은 서술형 문제는 오답처리 된다. 다만 상대성 이론의 원고에는 마침표가 없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모두 틀린 글일까? 나의 6살 쌍둥이 딸은 오늘도 '밥이가 맛있어'라고 말을 했다. '뭐라고 말하던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깟 맞춤법 정도 틀려도 좋다고 본다. 뭐라도 쓰는 편이 낫다. 일부러 틀리지 않는다면 뭐든지 쓰고 지적하면 지적 받으면 그만이다. 지적하는 것도, 받는 것도 나쁠 것 없는 가벼운 행동이다. 다만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본질'이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라도 하고 실수하는 편이 낫다.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되면 출발 할 것이 아니라, 가던 중 빨간불에 서기도 하고 실수던, 고의던 딱지 몇 번 끊기도 하면서 운전하는 편이 '기회를 기다리는' 이보다 1cm라도 더 앞서고 있다고 자신한다. 틀려도 좋다. 쓰자.

*10년 전 사진... 죄송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홍보] 왜 히브리어의 어순은 '동사'부터 시작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