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Feb 25. 2022

[시집] 말 없음의 위로

평범히 살고 싶어 열심히 살고 있다

 수 많은 말을 듣는 것보다 아무 말없이 피어있는 풀 한 포기를 바라보는 것이 더 큰 위로를 해줄 때가 있다. 많은 위로보다 가만히 피어있는 꽃 한송이가 더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옹알이 할 시절,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모든 효도를 다 한다고 했다. 사람은 말을 배우며 사실상 더 큰 갈등이 생기곤 한다. 짧은 시가 해주는 위로는 '수많은 활자'가 나불대는 위로와 차원이 다르다. 몇 자를 훑었을 뿐인데 꼬여 있는 마음이 스믈스믈하고 녹아들어간다. 내 상황과 감정 속을 들여와 정확하게 아픈 부분을 치료해준다는 '나노치료'보다 더 정확하게 환부를 들여다 보고 치유한다. 최대호 작가는 독자 한 명, 한 명을 모두 들여다 보지 못했음에도 많은 사람의 환부를 정확하게 치료했다. 사시 그렇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줄거라는 믿음은 상대가 입을 열수록 깨지게 돼있다. 나와 공감되는 일보다 나와 반대되는 일을 마주 했을 때, 실망감이 더 크고 결국 혼자라는 고립감에 빠진다. 말 없는 풀과 꽃과 동물들에게 우리가 위로받는 이유는 그들이 하는 위로가 전체를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말이 많진 않았다. 특히 처음 본 사람이나 분위기에서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고 살진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한 어르신은 말씀하셨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이 말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을 간다'는 군대 철학과 비슷하다. 불필요하게 자신을 내보이면 결국 상대는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떠나간다.


 내가 존경하던 누군가는 항상 말이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말이 아닌, '눈빛'으로 짐작했다. 그가하는 무언의 위로와 충고를 '눈빛'으로 받으며 그의 알 수 없는 깊이를 짐작했다. 그를 안지 오래되고 그와 술 한 잔 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내가 봐왔던 깊이는 온데간데 없었다. 눈빛으로 말하던 충고와 위로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에게 실망을 했다. 그 뒤로 그의 눈을 봐도 어떠한 존경심이 생겨나는 법이 없었다. 결국,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 상대가 나를 아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말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짐작하고 있어야 하고, 내가 말했던 부분에서도 공감해야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천지를 모두 뒤져 볼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부모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오롯하게 자신만이 자신을 위로 할 수 있다. 말 없는 누군가의 눈빛이나 꽃 한송이, 풀 한포기를 보고도 위로되던 이유는 사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나이 어린 학생이 책 한 권을 추천했다. 누릿하게 손때가 세월의 흔적과 함께 묻은 책을 폈다. '시집'이었다. 정보를 담는 종이는 활자보다 여백이 많았다. 쉽게 읽고 빨리 읽을 수 있는 분량을 넘어 책은 온전하게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나 또한 책 추천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누군가는 책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다른 선물과는 다르게 책선물은 아주 특별하다. 보통 책선물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읽고 감명 깊은 책'을 선물한다. 고로 선물받은 이는 책을 읽으며 상대가 넘어왔던 흔적을 따라가게 된다.


 상대는 이 지점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떠올리게 되고, 말하지 않은 가슴 속에는 무언가가 있을지 짐작하게 된다. 책선물을 받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고 다시 책 선물을 주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시집에는 굉장히 좋은 구절들이 많았다. "나는 왜 응원하는 큰 소리에는 힘을 내지 못했으면서 나를 비난하는 작은 소리에 주저하고 아파했을까?" 필사적으로 아파야만 하는 이들은 명분을 만들어 상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 내가 글로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작가'는 짐작도 못했다. 작가가 이런 글을 쓴 이유가 내가 받아들인 방향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 그가 말하는 일상의 행복은 별거 없었다. 그는 그저 좋은 사람들과 낭비한 시간이 행복이라고 했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는 일상이나 가만히 아이의 부족한 그림그리기를 지켜보는 일상들 모두가 '행복'이다. 그런 행동들을 빨리 치워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행복'을 빨리 치워버리고 '행복해져야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혼자 조용히 글을 읽으며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도 행복이고 지루하게 흘러가지 않던 어느 날도 행복이다. 행복을 한 사발 가득 떠 놓고, 입으로 떠먹여 주지 않는다고 칭얼거리는 어리광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야 한다. 그의 시집에 '마음문제'라는 시가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올 사람은 길을 만들어서라도 오고, 안올사람은 네비 찍어줘도 안온다.'


 이미 마음이 뒤틀린 사람은 별 수를 다 써도 고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미 불행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마음은 별 수를 다 써도 방법이 없고, 이미 비난하기 위해 작정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칭찬을 들을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한다면, '그러지 마세요'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렇군요'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쓸데 없는 과소비는 물건이라도 남는데 쓸데 없는 감정소비는 후회만 남더라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걱정과 불안은 그 어떤 걸로도 보상되지 않는 감정이다. 키우면 키울수록 더 걱정해야하고 불안해야 할 이유를 찾게 되고 다시 이것은 순환된다. 말이 적은 화풍이 대하 소설보다 우리를 더 위로하게 하는 가끔의 이유는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것도, 나에 대해 가장 큰 고민을 하는 것도, 나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모두, 그 누구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전편보다 더 나은 후속_달라구트 꿈 백화점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