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Mar 06. 2022

[수필_원서] 보호자 없는 아이들

Spilled Milk: Based on a True Story  독후감


"Just remember, rain doesn't seem all that threatening at first, but too much rain can turn into a flood." K.L Randis


(처음, 비는 위협적이지 않아 보일지라도, 너무 많은 비는 홍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 동생을 보호하고 엄마를 돌봐야하는 부담감. 실제 아버지에 대한 학대를 묘사한 부분은 크기도 길지도 않다. 그 이후에 대한 삶을 이야기 한다. 불행한 삶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불행한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일종의 '원망'의 대상이다. 어린시절, 나의 집은 큰 불화가 없었다. 가정적인 아버지와 현명하신 어머니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니, 세상에는 가정에서 시작하는 불행이 있을 수 없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면서 가정이 불우한 이들을 만나게 됐다. 이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여겨지는데는 거의 100% 부모의 영향이 컸다. 가령 제 아무리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던 이도 부모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가정환경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 않았다. 제 아무리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이라고 하더라도 부모 중 일부가 극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스스로 불완전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보였다. 책의 후반부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처음, 비는 위협적이지 않아 보일지라도, 너무 많은 비는 홍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살아가면서 다양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황당한 직장상사를 만나거나,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연인과 헤어지기도 한다. 불행이라 여겨지는 수많은 고통의 순간은 대게, 한정적이다. 가령, 회사를 옮기거나, 전학을 가거나, 새로운 연인을 만나거나 하는 대체제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나를 낳고 기르던 부모가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은 사뭇다르다. 거기에는 피할 곳도 없고 대체 방법도 없다. 꾸준히 법과 윤리적으로 연결된 피할 수 없는 대상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아주 잠시일지라도 그 고통은 평생을 함께한다. 



 어린시절 성적학대를 당한 아이의 삶을 묘사하는 이 글은, 책의 주인공이 Brooke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K.L 랜디스가 소녀였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한 글이다. 책은 허구와 실화가 적절히 섞인 소설이다. 대부분 어린시절의 기억은 자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런 이유로 어린시절의 가정환경은 그 사람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구성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부모'가 되서는 안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이들은 선천적인 불행아들을 만들어낸다. 오래 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편지'를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살인자'의 동생에 관한 소설이다. '살인자'에게는 동정의 여지를 줄 가치가 없다고 여기던 나였다. 그들의 가족과 본인들은 '사악'하고 '지독'한 존재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 소설에 등장한 '살인마'는 어리버리한 판단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다. 그 뒤로 그의 동생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간다. 결은 분명하게 다르지만, 피하지 못하는 꼬리표나 트라우마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걸림돌이 된다.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고, 친구와 보내는 사적인 장소와 시간에도 지나갔어야 할 악몽은 느닷없이 되돌아오며, 고통의 순간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대부분의 범죄는 순간적으로 벌어진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범죄는 가해자에게는 찰라의 순간이겠지만, 피해자에게는 영원히 쫒아다니는 '평생의 고통'이 되는 일이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순간의 죄를 짓지만, 피해자는 영원한 삶을 잃는다. 범죄 중, 가장 죄질이 나쁜 범죄는 그런 이유로 '성범죄'다. '성범죄'는 일순간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상대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긴다.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아흔이 넘은 노파고, 다른 사람은 17세의 젊은 청년이다. 둘이 같은 범죄를 지었다고 치자. 그 둘에게 모두, '무기징역'을 내리자. 벌에 대한 징벌은 똑같이 내려졌으나, 아흔 넘은 노파와 17세의 청년이 받게 될 '죄값'은 분명 다르다. 100세 시대에 아흔이 넘은 죄수의 죄값은 10년이지만, 17세 청년의 죄값은 83년이다. 사람의 시간을 앗아가는 '교화시설'은 현대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일들 중 하나다. 범죄자에게 '시간'을 앗아가는 벌은 주는 것은 그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것을 앗아가는 일이다.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평생을 지워지지 못하는 상처로 갖게 된다면, 17살과 18살도 적지 않은 시간을 고통에서 살게 한다. 나이 어린 이에 대한 성범죄가 죄질이 나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서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 성이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만이 겪는 경험인지는 모르겠으나,'이성'이던 시선이, '누군가의 딸'로 바뀌게 됐다. 이런 시선의 변화는 모든 사람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로 바뀌었다.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고 했다. 다만 누군가는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않는다. 그가 죄값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법적 조치를 취한다. 행복해야 할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법정', '범죄', '불안' 등으로 채워진다면, 감히 소설 한 권 읽었다고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솔직히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돌아 올 방법없는 현실에 구역질 나는 소재가 유독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모국어로 적혀져 있지 않은 영자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예상한 흐름과 전개가 아니였던 이유도 있지만, 글이 엉성한 느낌이 적지 않게 들었다. 가령, 비효율적으로 문장이 길고 구두점이 찍히지 않는 문장이 적지 않다. 내용은 꽤 산만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교정이 되지 않아. 'lemme know(let me know)'와 같이 불필요한 구어가 도대체 책에 왜 들어가는지 불편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소설이 종이책 출판이 이어지면서 이모티콘이나 채팅용어가 간혹 들어가긴 한다. 이런 글이 조금 더 표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출판도서에서 이런 용어를 만나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다. 모쪼록 꽤 오랜 기간에 걸려 읽었다. 다소 부족한 부분도, 생각할 부분도 많은 책이다. 




작가의 이전글 [읽을책] 물들이다 그리고 스며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