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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0. 2022

[역사] 일상에서 확인하는 인문학과 역사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by 윌라오디오북


 이건 핑계일수도 있지만, 인문학과 역사 이야기를 좋아한다. 때마침 음식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이 책이 가진 끌어담김을 거부할 수 없었다. 중앙의 정치와 역사에서 떨어져 있는 '제주'에 거주하다보니, 얼핏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에 몰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TV에서는 '서울'의 한 지명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고 역사에서 또한 내륙지역의 지명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일으키는데, '제주'는 '몽골 지배기'에 잠깐 언급되고 근현대 한반도 가장 큰 학살사건 중 하나인 4.3사건도 그다지 비중있게 그려지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역사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쉽지 않다. 제주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나, 광해군의 유배지다. 대부분 제주는 정치범 수용지로 이용됐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일종의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처럼 정치적 패배자에게는 온갖 죄목이 씌워지고 수용됐다. 조선왕족실록 기준에서 유배를 가게 된 사람은 총 700명이다. 이 중 200명이 제주로 유배된다. 이는 뉴질랜드의 역사와 비슷한데, 영국은 국내의 정치범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뉴질랜드'로 유배 보냈다. 이처럼 '정치범'들이 유배를 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교육선진국 '뉴질랜드'의이미지와 십 수년간 수능 표준점수 평균 전국 1위가 제주라는 것또한 연결해 볼만한 재미난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옆길로 샜지만, 사실 역사는 '중앙역사'를 벗어나서도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식'과 '문화'가 그렇다.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한 '맥주'를 꺼내며 이 책의 첫장을 함께 했다. 



 맥주는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했다. 이 역사는 자그마치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량하고 시원한 맥주의 이미지와 다르게, 당시의 맥주는 걸쭉한 형태의 음료였다고 한다. 사실 인류 음식 역사의 발전 대부분이 '보관'의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맥주의 기원은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으나, 그 번성은 '깨끗한 식수'를 공급 받기 위한 고민에서 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냉장고가 없던 시기,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깨끗하게 정제되지 않은 물은 금방 상하기 일수였다. 부패된 물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했는데, 사실 책에는 없지만, 물에서 발생하는 고약한 냄새를 가리기 위해 동양에서는 '차'가 발달하기도 했다. 습한 기후에 농사짓기 어려웠던 영국은 짧은 풀을 이용하여 '축산업'을 발전 시켰는데, 그로인해 '고기'를 먹는 문화와 '유제품'을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유럽인들은 도축한 가축을 나눠 먹곤 했는데, 냉장보관이 어렵던 시기, 조금 오래된 고기에서 나는 쉰냄새를 감추는 것이 굉장한 고민이었다. 이런 냄새를 감추는 아이템이 인도 남부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로, 유럽인들은 '후추'를 직구매하기 위해 대항해시대를 열기도 했다. 대항해시대는 요즘처럼 우리가 배를 타고 유람하는 것과는 성격이 달랐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씻지도 못하고 신선한 야채와 물을 구하기 힘들어, 몸에서 냄새가 나고 살갗은 알 수 없는 괴병으로 썪어 갔다.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게 나서야 하는 길이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항해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와인이나 맥주와 같은 음료가 또다시 발전하고, 항해거리와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럼주'가 발명되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오래 보관하는 식품'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썩지 않는 음식을 만들거나, 썩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사명처럼 보였다.



 예전에 일 때문에, 전국을 모두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강남, 일산, 대구, 광주, 부산, 청주를 비롯해 전국의 대부분의 지방을 다녔을 때, 정말 놀랍도록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은 '전주'를 갔을 때의 일이었다. 메스컴이나 여러 책에서 '전라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던 터지만, 단순히 '인식의 차이'라고 여길 때 였다. 그저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식사를 했으나, 확실히 그곳의 음식은 대단하다는 생각 박혔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전라도 음식'에 대한 첫인상을 간직하고 살아가다보니, 왜 그곳의 음식은 맛이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남북으로 긴 한반도 지형을 봤을 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위도 상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보자면, 동서, 좌우로 긴 구조의 경우는 기후가 같다. 같은 농작물이 이동가능하다. 하지만 남북으로 긴 구조의 경우에는 위도의 차이 때문에 기온과 날씨가 달라진다. 즉, 남쪽으로 위도가 내려 갈수록, 기온이 올라가며 식품 보관에 불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 설탕이나 소금에 절인 식품은 보간 기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설탕과 소금에 절여진 음식은 간이 세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이런 추론도 해당 책에 언급되기는 한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는 평야와 산지, 강, 바다가 고루 모여지는 길목이다. 여기서 '산맥'과 '강'의 위치가 중요한 것은 온갖 식재료를 다양하게 구하기 쉽고 유통에서도 수월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에서는 '청귤청'이나 '한라봉청'과 같은 '청'을 담구는 집도 적지 않은데, 단순히 '맛'의 문제도 있겠지만, 여름철 수확한 귤 중, '판매하지 못한 비상품'을 설탕에 졸여 놓으면 한 해는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이유일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보급'이 굉장히 중요하다. 언제나 냉장고에서 맛있는 음식을 꺼내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쟁'은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오래보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콜라 보급에 문제가 생기자, 독일에서 개발한 '환타'나 더 돼지 어깨살을 모아서 썩지 않도록 염장을 한 2차세계대전 미국의 '스팸'이 그렇다. 한반도 전쟁 이후, 스팸이 미군부대로 들어오며 우리는 미군들이 먹다남긴 스팸을 이용하여 '부대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다. 오스만제국을 물리치자, 그들이 미쳐 챙기지 못했던 보급품인 커피를 가져가 먹기 시작한 것이 유럽에 커피가 전달된 기원이기도 하다. 전쟁은 음식가 땔래야 땔 수 없다. 얼마 전, 중국과 우리의 김치에 관한 이슈가 불거진적이 있다. 남미 원산지인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 온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니다. 우리가 빨간색 음식을 먹은지 그래 오래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다. 한국 전통 술이라고 알고 있는 소주는 마유주를 증류하며 만들어진 몽골 기원이다. 사실 음식의 기원을 따지고드는 것은 모두다 의미가 없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인류는 1만 년 그 위부터는 모두가 채집과 사냥을 하여 먹었고 전쟁과 교류를 반복하며 사실상 완전히 섞이고 섞이기 때문이다. 케찹의 기원이 중국이지만, 우리는 그에 대한 큰 신경을 쓰지 않으며, '날 생선'을 먹는 '사시미'도 '일본이 기원'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이들은 경제, 사회, 문화가 범벅인 우리 사는 세상에서 모호하게 형성되는 일종의 인식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주제에, 내가 아는 내용과 모르던 내용이 적절히 섞여 인상깊은 독후감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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