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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3. 2022

[수필] 아끼지말고 주고 받을 것_가난하지 않은 사랑

 얼마 전,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붙어 있는 보호필름을 떼어버렸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잘 보호하는 필름을 떼어버린 이유는 상처가 너무 잘 나서이다. 스크린에 지문이 많이 묻어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해결책을 물으니, 스크린에 지문 방지 보호필름을 붙이라고 하셨다. 다만, 보호필름을 붙이고 나니, 지문은 잘 보이지 않게 됐지만, 스크린도 흐릿하니 잘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액정 보호 필름은 상처가 잘 나지 않도록 보호한다고 했다. 역시나 생활을 하다보니, 보호필름은 스크린에 나는 자그마한 상처를 잘 보호해 주고 있었다. 스크린은 역시나 보호되고 있었으나 나는 언제나 상처난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었다. '본질'이 무엇일까. 애초에 스마트폰 제조 회사는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생활상처가 잘 나지 않는 스크린 위로 상처가 잘 나는 PET 제질을 붙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 이전의 스마트폰의 화면도 구매와 동시에 보호필름이 붙어 있었다. 나는 지저분한 보호필름을 붙이고 다니다가, 이 핸드폰을 처분할 때 쯤에야, 그 보호필름을 뗀 깨끗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상처주지 않기 위해, 혹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우리가 조심 해야 하는 것들에는 이런 본질없는 부작용들이 있다. 결국 그것의 생명이 끝난 뒤에서야 우리는 진짜를 열어보게 된다. 진짜는 깨끗하게 보존된 채로 남아 있겠으나, 그것은 더이상 내것이 아닌 것으로 끝이난다. 무엇을 위해 조심해야하고, 무엇을 위해 상처를 덜 줘야할까. 

 스마트폰 액정은 대게 스마트폰에서 가장 비싼 소재 중 하나다. 이것을 재판매하거나 재활용할 때, 스크린의 상태는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깨끗한 상태를 물려주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마음껏 사용하고 내 흔적이 묻는 것에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깨끗한 스마트폰을 보존하는 일은 다음 사용자를 위한 일이지, 나를 위한 일은 아니다. 사랑과 행복은 그렇다. 깨끗하게 보존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이해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영원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틀림없이 나를 떠날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나를 떠날 그것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흔적을 묻히는 일을 두려워한다. 과연 그게 맞는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제조사는 스마트폰에 깨끗한 필름을 붙여준다. 소비자를 위한 일처럼 보이는 이 일이 사실은 제조사와 유통사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후 재구매 사용자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렴풋 잊는다. '가난하지 않은 사랑'은 과연 그렇다.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과 다르게, 사랑은 풍요를 상징한다. 아낌없이 주고, 아낌없이 받기에 사랑의 유동성은 거침없이 빨라진다. 식당을 들어서면 '길게 줄이 들어선 식당'에 대한 믿음이 있다. 갓 들어온 재료가 금방 나가 신선한 재료로 교체되기에 언제나 식품의 신선도가 높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주기만 하는 사랑도, 받기만 하는 사랑도, 언제나 그 안에서 고여버린다. 고여버린 것은 썩어버린다. 사랑은 시원시원하게 줘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듬뿍 듬뿍 채워야한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하기에 사랑이 드나드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신선한 사랑을 채우는 '풍요로움'이 된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주서윤 작가 님이 '사랑은 뭘까'하고 고민하는 대목에서다. 그녀는 사랑이 뭔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에 붙여진 문구를 바라봤다.

'주의, 기대면 추락위험', '주의 손대지 마세요' 

그녀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그 글을 읽었다. 문이 닫히며 그곳에 타고 있던 사랑의 얼굴이 가려졌다. 닫힌 사랑에는 역시나 주의가 필요하다. 마치 엘리베이터의 문처럼, 꽉. 닫혀 있는 그곳에는 기대서도, 손을 대서도 안된다. 이것은 위험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그것의 문이 열렸음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문제다.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닫혀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얼굴을 보이며 문이 열린다.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에 들어서서, 우리는 때로 벽에 기대고 원하는 곳을 함께 가고자 손을 대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는 높은 곳으로 우리를 쉽게 이끌어주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다보면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이 항상 나의 곁에 머물고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은 매번 속으면서, 속지말아야지 생각하고, 다시 속는 일이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을때,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셨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첫 아이를 낳으시고 두 번 다시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3년 터울로 내 동생이 태어났다. 우리는 금방 잊어버리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에게 버럭하고 화를 낸 뒤에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시 뒤돌아서 야단을 칠 때가 있다. 언제나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뒤늦게서라도 항상 본심을 이야기 해야한다.

 그녀는 적지 않게 MBTI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성향은 INFJ라고 한다. '삶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류다. 인생에 생산적인 고민보다 본질적인 고민을 많이하기에 불필요한 걱정과 생각을 하고 사는 부류다. 그녀에 대한 성향을 이처럼 잘 아는 이유는 나또한 INFJ 성향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지인으로부터 우연하게 듣게된 MBTI 성향테스트는 처음 한 뒤로, 수 번을 더 했다. 나는 단 한번도 INFJ가 아닌 적이 없었다. 주어진 문제에 대답을 할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누구나 그러는거 어냐?'

그런 혼잣말 뒤에 내린 결과은 INFJ. 1%도 안되는 희귀한 유형으로 실제 현실세계에서 만나기 어려운 부류라고 한다. 내가 독특할 것이라고는 막연하게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참 바보같다. 이런 부류를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우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비롯하여 내 주변에는 수많은 INFJ가 있다. 인터넷을 봐도 만나기 힘든 INFJ가 왜 이렇게 많이 보이냐는 질문도 많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이들은 그런이들이 다닐만한 곳에 있는 부류들이기 때문 일것이다.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선별된 정보에만 알고리즘에 의해 둘러쌓이게 되는 현상을 '필터버블'이라고 한다. 나의 유튜브첫 화면에는 추천영상으로 '백색소음', '콩순이', '깊은 잠 자는 음악' 등이 나온다. 사용자의 성향에 맞춰 추천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않았을 때, 다른 이들의 첫 페이지에도 비슷한 영상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책스타그램 #책그램 #북스타그램 #북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그램' 내가 자주 사용하는 해쉬태그는 인스타그램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나도 그런 류의 글을 찾아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다보니 세상 찾기 힘들다는 INFJ가 모두 조그마한 버블 속에 몰려 살고 있다. 해외에서 오랜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더 큰 행복을 위해 고통을 삼키는 일을 수 년이나 반복했다. 내가 이 것을 이겨낼 수 있던 이유는 옆에서 함께 인내하는 '동료 형' 덕분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그와 이야기를 하게 되며 진실을 깨달았다. 옆에서 인내하던 '동료 형'은 실제로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그 또한 나와 같이 인내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은 말 그대로 착각이었다. 그는 그저 하루 하루 벌어지는 일을 즐기고 심심한 하루 역시 그 자체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와 나의 행복도의 차이가 꽤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뒤에, 나는 그 회사를 퇴사했다. 삶에 대한 고민이나, 사랑에 대한 고민은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했던 고민들이 이처럼 글로 기록되면 누군가는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하는 일종의 자극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는 비현실적인 고민들이 문학이 되어 누군가에게 힘이 되거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작가 주서윤 님이 그러는 것 처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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