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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4. 2022

[역사] 시간을 넘어선 공간의 역사_골목길 역사산책

 역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흔히 역사는 종이 위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는 3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째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 둘째는 과거의 기록과 흔적, 셋째는 그것들을 재구성한 시선이다.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역사는 종교와 더불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굉장히 좋은 명분이 된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에스파냐 여왕인 이사벨의 후원을 받고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난다. 그중 만난 쿠바와 아이티 등을 마주하며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의 역사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오류를 마주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이미 수 천 년 전 부터,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땅이다. 이 곳에 유럽인들이 들어왔고 침입자들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것은 그것은 누구의 역사일까. 북아메리카를 지배하던 국가는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와 네덜란드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역사일까, 프랑스, 네덜란드의 역사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대륙을 마치 자신의 것인냥 취급하는 유럽인들의 야만적인 사상에 대해 비웃을지도 모른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88년 전인 1404년까지 제주도도 사실상 독립국이었다.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이 섬에는 구석기시대부터 독립국이었다. 그곳의 원주민들을 복속시키고 자국으로 합병시킨 역사를 비난하게 되면 우리의 역사 또한 미궁에 빠진다. 일본인이 근대 개항을 했던 인천, 부산, 원산항. 우리가 '일제 강제 점령기'라고 부르는 기간은 사실상 일본통치시대다. 1910년 8월 16일 총리대신인 이완용은 데라우치와 조약을 맞는다. 이 조약 원문에는 '병합조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한반도가 일본에 통치권을 양여하고 일본제국에 병합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이 조약이 불법이자 무효의 것이라고는 하나, 당시 국제 사회에서는 이 조약에 효력을 인정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구글'이나 '네이버' 등에 '제2차세계대전 일본영토'라고 검색하면 여기에는 우리 한반도의 지도 위에 일장기가 붙어 있다. 이것에 굉장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같은 시기,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부 위에도 일장기가 붙어 있다. 이러한 '강제점령시기'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국사 교과서에서 언급하는 '고구려 최대영토'를 설명하기 까다로워진다. 13세기 몽골제국이 세계의 80%를 지배할 때, 조차 우리는 '원 간섭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간섭기', '강제점령기' 등의 용어에 대해 우리는 깊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아프리카 강제점령기', '독일 나치의 프랑스 간섭기' 어디서도 찾기 힘든 용어들은 왜 필요한 것일까. 즉, 역사의 3가지 해석 중, 우리는 세 번 째인, '재구성한 시선'을 이용하여 일종의 목적을 갖진 않았을까 의심해 본다.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에 와선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로 그 절반 이상인 50%이상이 독재 정권이 들어섰던 국가였다. 독재정권은 역사를 정치에 어떻게 이용하는가. 이것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재정권이 역사를 이용하는 일은 그다지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치가 유럽의 여러 국가를 침공하는 첫 번 째, 명분은 '아리안족'이었다. 아리안안이라는 민족명은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명분이 됐다. 아리아는 현재 인도의 조상쯤 되는 민족이다. 이들은 이란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조차, 러시아 민족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역사는 정치에 쉽게 이용된다. 그러기에 이처럼 '해석'으로의 역사가 아닌 역사의 그 첫번째와 두번째인, 과거에 있던 사실과 기록과 흔적을 통해 역사를 생각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굉장히 모호한 '민족'이라는 개념과 '영토'라는 개념은 애초 존재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장소와 그 장소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기록과 흔적은 언제나 '학문'으로서 흥미롭다. 종이에 뭐라고 기록을 했건, 기록하지 않았건 오늘 내가 밟고 지나간 땅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다. 그 위로는 사람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이 나고 죽었으며 그사이에 슬픔과 기쁨이 존재했을 것이다. 즉, 생과 사 사이에 노와 병이 있고, 희노애락이 쉴세없이 수레바퀴처럼 굴러 지나갔을 것이다. 그 위로 나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나 또한 흔적을 남긴다. 종이 위가 아니라, 가장 많은 역사의 흔적을 담은 곳은 바로 발 아래다. 우리 한반도 이곳 저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유적과 흔적,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도 수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인물들이 공간을 공유한다. 실제 책은 수백 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다가, 근 현대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역사책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이야기와 이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도교'나 '불교'와 같은 이땅의 인간들을 사상을 지배하던 철학과 종교까지, 아주 이국으로 나갈 것 없이 새롭고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율곡 이이'에 관한 내용이다. 최근에 '조선천재열전'이나,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등의 역사 책에서 심심찮게 '율곡이이'를 만나게 됐다. 사실, 율곡이이 하면, 심사임당의 아들, 10만 양병설, 5,000원짜리 지폐 밖에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렇다. 다만, 율곡이이에 대한 내용은 알면 알수록 호기심이 강렬하게 든다.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을 보며 '천재'를 떠올리듯,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 인물에 대해 더 잘 알려져야 할 것처럼 보여진다.

 우리나라 지폐를 보면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율곡 이이를 기준으로 두고 그 시기의 인물들이 모두 사용된다는 점이다. 100원에 이순신은 율곡 이이와 덕수 이씨 집안의 19촌 숙질 사이다. 5만원 권의 신사임당은 율곡이이의 어머니이고, 1000원 권의 퇴계이황과 율곡이이는 사제 지간이다. 즉,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은 모두 율곡 이이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고 같은 시기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율곡 이이에 대해 이처럼 모르는 것은 왜그럴까 생각해보게 됐다. 책에서는 류성용과 율곡이이에 대한 인연이 잠시 설명된다. 이 내용은 아주 짧게 언급되고 지나갔다. 율곡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비판한다. 그러나 왜란이 발발하고 이이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후회한다. 이 대목에서는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천재성에 열등감을 가졌던 천재 '주유'와 오버랩됐다. 우리의 역사도 조금만 흥미의 요소가 가미되고 각색되면 '삼국지'와 같이 인기있는 소재가 참 많다. 주어진 '사료'와 '자료'를 가지고 많은 작가들이 우리 역사 또한 재밌게 재구성하고 스스로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사진과 그림이 많이 있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러 시선으로 사건과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의 시선을 다양하게 넓혀주는 좋은 책들이 많아지길 고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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