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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07. 2022

[계발] 풍요로워지는 뿌리_웰씽킹


 어두운 방 안에 촛불을 키는 한 가지 행동을 하면, 두 가지 현상이 생긴다. 첫 째, 주변이 환해진다. 둘 째,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어둡게 된다. '빛과 어둠'이라는 양극이 생겼다. 불을 밝힌 하나의 행동이다. 만약 시간이나 공간, 크기를 늘리면 어떻게 될까. 밝아진 주변으로 따뜻함이 생겨난다. 어두운 곳은 차가움이 된다. 따뜻함 주변으로는 '건함'이 생기고, 차가움 주변으로는 '습함'이 생긴다. 빛 주변에 전자기파가 흐른다. 파동에너지의 진동이 높아진다. 반면 어둠 주변 에너지는 줄어든다. 에너지가 식물을 투과하면 식물은 전자를 전달받는다. 식물은 화학반응을 한다. 이 화학반응은 물을 분해하여 산소를 생성한다. 광합성이다. 식물의 방향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향한다. 식물이 밝음으로 향하니, 동물도 따라 모인다. 동물과 식물이 모여드니, 사람이 모인다. 불을 밝히는 행동은 '하나'지만, 일어나는 현상은 '둘'이다. 또 파생 효과는 수없이 많아진다. 빛과 어둠은 정반대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어디서 부터 '밝음'이고 어디서 부터 '어둠'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밝음과 어둠은 명확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라 점차 미세하게 그라데이션 효과를 가진다. 중간을 들여다보면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중간지대가 존재한다. 양극은 이웃하지만 대립되고 섞여 있지만 분리되어 있다. 세상은 '생명'과'죽음', '성공'과 '실패', '어둠과 밝음', '습함'과 '건함' 등의 다양한 현상이 있어 보이지만, 크게 보자면 그저 '음'과 '양'이다. 즉, 얼핏 들여다 보아도, '습함'과 '밝음'은 닮을 수 없다. 그 뿌리가 '빛'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부자되는책읽기', '유대인의하루는저녁6시에시작된다'가 출판되고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좋은 내용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내용도 일부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돈보다 행복이 더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것 보다 자유로운게 낫습니다.' 등이었다. 글쓴이는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작성자는 도서 구매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제목과 주제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나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생각이 다르다.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두 개의 것은 사실상 같이 움직인다. 빛을 가진 사람이 따뜻함도 가진다면 욕심일까. 그렇지 않다. '하늘이나 신'이 공평하여 어둠 쪽에게 '따뜻함'을 줄 것 같지만, '하늘이나 신'은 공평하여 빛을 가진 자에게 따뜻함과 건함, 에너지, 식물, 동물, 사람을 공정하게 모두 준다. 이것은 일종의 규칙이다. 밥은 먹지 않았으나, 배가 부르게 되는 일. 혹은 공부는 하지 않았으나 성적이 잘 나오는 일. 처럼 모순이다. 빛을 밝히지 않았으나, 뽀송뽀송 건조하고 따뜻하며 동식물이 모여드는 일을 바라는 것이다. '밝음', '건함', '산소', '생명' 등을 모두 가지거나, 많이 갖는 것이 욕심이 아니라, 상충되는 두 가지를 모두 갖는 것이 욕심이다. '어둠'과 '생명'을 한 번에 취하는 것이 욕심이다. 즉, 많은 걸 갖는 것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딱 2개라도 갖는게 더 큰 욕심이다. 풍요는 또다른 풍요를 낳는다. 마치 비슷한 것끼리 서로 이끌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사실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 뿌리가 같아,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 뿐이다. 누군가가 '행복함'과 '부유함'을 모두 갖는다면, 사람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또한 그 뿌리가 같다. 풍요는 어떻게 보아도 '음'과 거리가 멀어보이니 말이다. 물론,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절대적인 수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행복이 대부분 '돈'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불행이 '돈'에서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어렵다. 가난하면 불행하다는 공식이 맞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던 성공이던, 돈이던 모든 방향이 '밝음' 쪽으로 기울여져 있어야 '닮음'들이 이끌려 온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공한 이들의 특징은 '긍정적'이다. 직접적으로 알고 있던, 책을 통해 할게 됐던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된 성공한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대부분은 '낙천주의자', '긍정주의자'라는 딱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이하로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말버릇이나, '실패에 두려움이 없는 성격'이라거나, '자신의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확언'하는 말투'까지, 사실 그 뿌리는 모두 '긍정적인 시선'에서 출발한 현상일 뿐이다.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 불을 밝히고 습해지길 원한다면 인위적인 '힘'을 들여야 한다. 다만, 자연스럽게 불을 밝히면 건함이 따라온다. 즉, 긍정적인 사람이 부정적인 효과를 갖기 위해 인위적인 '힘'을 쓰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좋은 일은 오게 되어 있다. 누군가는 긍정적인 생각을 함에도 '부정적인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앞으로 더 잘될거야'라는 지난 내 책에 비슷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우리는 100kg의 물건을 100m 옮기기 위해, 두 손과 두 발은 하는 일에 집중한다. 만약, 나의 왼손이 세차게 원을 그리고 오른발은 축구공을 튕기고 머리는 앞 뒤로 세차게 흔들고 있다고 해보자. 그 상태에서 남아 있는 오른손과 왼발을 아무리 집중해도 100kg을 100m까지 들어올리기 쉽지 않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여건을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의식세계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다. 나의 의식이 제아무리 목표를 향하고 있더라도 머릿속을 휘집어다니는 '무의식이 엉망징창이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기 어렵다. 고로 대부분의 성공한 이들의 특징은 눈을 감고 잠재의식을 들여다보는 '명상'과 머릿속에 기본 '긍정의 디폴트값'을 설정하는 '독서'를 습관화하고 있다. 의식은 우리가 집중할 때, 목적지로 향하게 해주지만, 무의식은 우리가 잠을자거나 생각치 않는 모든 순간에도 작동하여 저절로 그것을 이루게 만든다.



 결국 그 뿌리는 같다. '부자가 되라'는 말은 '비싼 자동차'를 사고 남들 수 년 치 연봉에 해당되는 시계를 차고 다니는 목표를 달성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는 한가지 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풍요', '행복', '부', '성공' 등 모든 것을 전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에 불'을 켜는 것이다. 밝음이라는 하나의 뿌리가 점차 주변을 밝혀 이와 닮은 모든 것을 끌어당길 것이다. 내가 모르는 무의식의 뿌리까지 '긍정'이 차오를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부자를 보고 열등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열등감은 아무리 봐도 '빛'과 거리가 멀다. 다른 이의 '여유로움'을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시기'는 아무리 봐도 '빛'과 거리가 멀다. 누군가의 성공을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폄하'는 아무리 봐도 '빛'과 거리가 멀다. 실패를 당했다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좌절'은 아무리 봐도 '빛'과는 거리가 멀다. '가난'하더라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믿음'에 의심하지 말아야한다. '의심'은 아무리봐도 '빛'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모두 빛을 쫒아 날아다니는 한마리 초파리와 같다. 그것에 가까워 질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종교는 그것을 여러 상징으로 설명했으나, 결국 '진리'는 같다.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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