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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1. 2022

[읽을책] 스마트폰 없는 10일...

 4월 초, 스마트폰 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기존에 쓰던 전자책(하이센스A5)을 메인폰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도 살았었는데, 다시 없어진다고 크게 불편할까. 하지만 분명 불편했다. 며칠 전 '소고기를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단언컨데 너무 좋은 책이다. 시선을 확장해 주는 책을 나는 '좋은 책'이라고 본다. 이 책은 기존에 알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책 한 권 읽고 세계관을 한정할 수 없다. 비슷한 다른 책도 읽을 예정이지만 분명 신선하고 좋다. 첫 페이지부터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넘쳐났다. 남들은 '음식 사진'이나 '풍경 사진'을 찍는데, 나의 이미지 폴더에는 보통 '책의 페이지'가 찍혀 있다. 잊혀지기 아까운 문장을 포착한다. 연필, 형광펜, 포스트팃으로 표시하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급하게 옆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그러면 책이 책꽃이에 들어가 있어도 언제든 사진첩에서 후루룩 읽을 수 있다. 모든 글들이 모든 순간을 자극하지 않는다. 죽은 시계가 살아 있는 시계보다 하루 두 번은 더 정확해진다. 살아있는 명언들이 모두 나에게 몰려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잊혀진 단 한줄의 글이라도 정확히 필요한 타이밍에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매번 좋은 글을 읽는 것은 '단 한번도' 맞지 않는 '얼추' 맞는 시계를 착용하는 것이고, 읽은 책 중 내가 포착한 글을 다시 읽는 것은 '하루 딱 두 번'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죽은 시계를 착용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자, 낚시대 없는 낚시꾼 같은 기분으로 강가에 앉아 고기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포착해야 할 것들에 눈을 껌뻑이고 다음 장으로 넘기는게 못내 아쉬웠다.

 내가 느낀 첫 번째 불편이 지나고 두 번 째 불편은 '책 소개'를 위해 '블로그'나 '인스타'에 사진을 찍는 일이 어려워 졌다는 것이다. 금방 완독한 책을 바로 사진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일은 간단한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했다. 다만,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태블릿으로 사진을 촬영하거나 619g이나 되는 DSLR카메라(캐논eos90d)로 책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한 찍은 사진을 다시 PC로 옮겨서 작업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스마트폰이 사라지면 책을 읽을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게됐다. 스마트폰이 없어지자, 불편한 점은 오직 '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업무상 전화통화가 걸려오지 않기도 했고 문자가 발송되거나 수신되지 않기도 했다. 전화를 걸어도 신호가 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기존에 사용하던 명상어플인 CALM도 무용지물이 됐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이 사라진 일이 불편함만 있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외부 연락에 대한 강박이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마시고 한참이 지나도록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점차 편안해졌다. 나를 괴롭히던 '스팸' 문자와 메일, 전화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이동 시 항상 거추장스러운 무게의 소지품도 줄어 들었다. 지금까지 대략 열흘간 스마트폰 없는 일상을 보냈다. 사실 업무상 첫날 부터 불편함을 느꼈음에도 생각보다 오래 견뎠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어플 사용과 기본적인 전화 문자가 되지 않는다는 점, '삼성페이'의 부재도 커닿게 다가왔다. 결국은 스마트폰 없는 일상을 포기하고 스마트폰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역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스마트폰 없는 생활은 역시 불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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