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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8. 2022

[수필] 아름답고 안타깝고 기특하고.. 복합적인 고부의

반짝반짝 윤여사  독후감

내 삶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내 문제 상황만이 극단의 크기로 보일 때가 있다. 그냥 고개를 들고 주변만 살피면 되는데, 티끌만한 상처에 시선을 못 떼다보니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여겨버린다. 마침 나에게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이야기. 귀여운 그림체와 읽기 쉬운 문자체로 이 책은 시종일관 밝고 명랑하다. 책에 담지 못한 감정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자면 가늠도 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질환은 여타 다른 병과 성격이 다르다. 눈을 들여다보면 어제와 같은 얼굴에서 나와는 다른 시간과 세계로 떠나버린 이를 바라보는 것은 당사자만큼이나 주변인을 힘들게 한다.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주변인이 더 힘든 병이다. 상대에게는 모든 기억을 외부에 남겨두고 내면만 홀로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 이를 바라보면 매일 이별하는 느낌이 든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 중,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치매'와 함께 찾아오는 '난청'이다. 나긋 나긋하게 말을 해도 부아가 치미는 상황이지만, 대게 환자들의 대부분은 '난청'이 함께 있다. 큰소리로 대화를 해야한다. 언젠가 '치매' 환자의 가족을 본 적이 있다. 환자에게 구박하듯 '반말'과 '고함'을 쳐대는 모습을 보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것은 내 작은 시선이 만들어낸 오만한 착각이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에 '큰소리'로 말해야하고, 그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다보니 뒷말이 짧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병과 같이 서로에게 충분한 대화를 나눌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과 달리 '치매'는 참 가슴 아픈 병이다. 주변인에게 점차 구박받고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병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고통'에 심히 공감하지 못한다. 책을 써주신 작가님의 끝까지 긍정적인 성향에 존경심이 든다.

 자기 부모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라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보살피고 말벗이 되고 또, 상대가 기억하지 못할 기억과 추억을 대신 기억해주는 일... 젊은 며느리가 한다는 것은 대단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상황에 비관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와의 이야기는 멋진 책으로 출판됐다. 보통의 사람들의 기억이 조그만 신체에 갇혀 사라지는 것과 달리, 신세대 며느리와 치매 시어머니와 이 이야기는 출판되어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함께 이식됐다. '반짝 반짝 윤여사'라는 제목을 집었을 때, 치매 노인에 관한 글일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더군다나 그냥 치매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들도, 딸도 아닌 며느리의 글일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이런 반전은 되려 읽기 편한 구성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만화와 그림이 함께 있다. 상황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섞여 있다. 그 내면을 직접 들여다 보자면 유쾌하지만은 않을 일일 것이다. 다만 명량드라마의 주인공이야기처럼 이 글은 재밌다.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가 불쑥 불쑥 던지시는 한마디도 꽤 묵직하다. 그저 '치매노인의 말'이라고 우습게 넘어갈 만한 하지않다. 사람이 시간에 함께 쌓아놓은 철학은 '기억'이 사라져도 '말'과 '내면'에 녹아져 있는 모양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가 어느 날부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일. 그것은 그냥 '질환'이라고 보기에 사무칠 정도로 슬프다. 양쪽에서 서로 공유하던 기억 중 한쪽 고리가 끊어졌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과 끊어진 실타래가 의미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허무함은 더욱 그렇다. 나와 다른 기억을 가진 상대를 마주하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사라지는 기억, 왜곡되는 기억' 뇌사 판정을 받는 것처럼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최대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에는 자세하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남편(아들)'의 심경 또한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갓 6살이 된, 쌍둥이를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말이 조금 통하는가 싶다가 어떤 날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해야하고 '당연히 혼자 하겠지...' 기댄다. 어쩐지, '일부러 저러나' 싶은 얄궂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러려니 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알법한 나이'가 될수록 기대치는 더 높아지고 반대로 일부는 기대고 싶은 마음도 생겨난다. 반대로 외적으로 성숙한 노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마 육아의 감정의 100배를 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치매는 퇴행성 질환이다.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한 번 진행되면 회복하는 것은 어렵다. 책에서도 뒤로 갈수록 '윤여사'께서 잃어가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를 보살피던 이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가족들은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치매 환자의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이들도 어렵지 않게 소개 되곤 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는 참 유쾌하고 기특하고 귀엽게 읽어 내려갔다. 작은 에피소드들의 모음에 괜히 흐믓해지기도 한다. 씻기고 먹이고 벗해주는 여러 일들의 고됨을 생각하자니 느끼는 바는 복잡했지만, 대게 아름다워보이고 유쾌하고 씁쓸하고 안타깝고 귀여운 복합적인 감정이 모두 드는 글이었다. 책의 구성이나 디자인도 독특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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